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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장진성의 인물초대석

[단독인터뷰] 김정일, 군단장 이상 군 간부들에게 당조직지도부 신분증 발부

글 | 장진성    필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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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 남한에 온 군 출신 탈북자들 중 군사계급이 가장 높았던 인물은 단연 최주활(현재 탈북자동지회 회장) 회장이다. 일반 군부대에서 근무한 것이 아니라 군 중앙기관 역할을 하는 인민무력부 대외사업국 1부에서 부부장으로 근무했기 때문에 최 회장의 대북경력은 누구보다 더 남다르다. 
 
아직까지도 최 회장의 대북 관련 지식과 증언들은 우리 한국 정보기관들에 귀중한 조언과 판단의 근거로 되고 있다. 그만큼 북한 체제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대북경력과 증언의 일관성에서 철저히 검증된 탈북자들만을 엄선하여 인터뷰를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뉴포커스가 최주활 회장을 만났다.  
 
 
북한에 있을 때 직업이 뭐였나?
 
68, 군에 입대해서 정찰국 소속 항공육전대에서 병사 생활을 했다. 71년도에 부대에서 군관학교 추천을 받아 정찰국 직속 외국어강습소 2년반에 입학하여 73년에 졸업했다. 그 해 소위 계급을 달고 인민무력부 대외사업국 지도원으로 배치 받아 근무를 시작해서 대위까지 승진하게 됐다. 
 
75년부터 78년까지 군적을 둔 상태에서 평양외국어대학 러시아학부 3학년에 의탁교육으로 편입했다. 78 10월에 졸업, 79 4월 체코슬로바키아 주재 북한 대사관 부무관으로 임명 파견되었다. 83년까지 근무하고, 소환되어 인민무력부 대외사업국 상급지도원, 부부장을 94년까지 했다. 그때의 계급은 상좌였다.
 
95 1월부터 5월까지 인민무력부 후방총국 융성무역회사 합영부장으로 근무하게 됐다. 5월에 북한을 탈출하여 10월에 대한민국에 입국, 국정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소에서 근무하다가 2011 6월 정년퇴직하여 현재 탈북자동지회 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탈북하게 된 경위와 동기는?
 
1992년부터 1994년 사이에 구 소련, 프룬제아카데미아를 비롯한 각 군사대학을 졸업한 사단장, 여단장 그 이상 간부들이 대거 체포되거나 처형됐다. 나의 직속상관이었던 대외사업국 김학산 국장을 비롯하여 모스크바 주재 북한 대사관 무관 소장 김정찬, 유고 주재 북한 무관 조재형 등 해외 무관부에 나가 활동하던 무관, 부무관들을 인민무력부 보위사령부에서 체포하여 처형했다.
 
그러던 중 본인도 연관지어 내부 조사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처형될 것이란 위압감에 탈북했다. 94년 당시 대외사업국 국장 뿐만 아니라 최룡해의 배다른 누나 남편인 상장 홍계성과 평양시당책임비서 강현수 아들 강운룡을 비롯한 군단급 북한 군 수뇌에 있던 구소련 유학생 출신들이 대거 체포되어 처형되거나 정치범수용소에 감금됐다.
 
 
현재 최룡해가 총정치국장이 됐다. 그때에도 최룡해가 군에 들어올 것이란 예상을 해본적 있나?
 
최룡해가 총정치국 조직부국장이 될 것이란 소문은 있었다. 그때가 90년 초반이었다. 인민무력부 차기 총참모장은 상장 홍계성, 차기 무력부장은 김정각이 될 것이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그런데 프룬제아카데미아 사건이 터졌다. 이후 92년 초 총정치국 조직담당 부국장 이봉원이가 당중앙군사위원회에서 김정일로부터 질타를 받고 현장에서 졸도하여 병원에 입원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 원인은 당시 작전국장이었던 대장 김명국에 대한 생활자료를 김정일에게 보고했는데 그 자료를 본 김정일이 "이 쓰레기같은 자료를 보고할거면 당장 없어져~! 김명국은 나의 작전국장이다."라고 말했다. 김정일의 그 분노가 어떤 의미인 줄 잘 알았던 이봉원이 현장에서 졸도를 했다. 
 
이봉원이가 병원에서 1개월 입원치료를 받는 사이에 군에서는 최룡해 1비서가 중장의 군사칭호를 달고 총정치국 조직 부국장으로 온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봉원은 끝내 간첩 혐의로 처형됐다. 
 
 
대외사업국에서 했던 일은?
 
대외사업국은 군사외교를 전담하는 부서이다. 첫째는 외국에 북한 무관들을 파견하고, 무관들에 대한 사업을 조직장악 지도하는 업무, 두번째는 평양에 주재하는 외국무관들과의 사업을 전담, 중근동, 아프리카 나라들에 군사고문단, 교관단을 파견, 군사인원 파견, 선발파견, 세번째는 대외에 김씨 일가 위대성, 영도의 현명성을 선전사업을 지도, 해외에 나가있는 동안 그 나라의 군사와 관련된 정보, 넷째는 군사과학기술, 자료, 현물, 무기를 입수해서 북한에 들여오는 사업이다.
 
 
대외사업국에서 본인이 주로 했던 일은? 
 
조직계획부에서 부부장으로 근무했다. 조직계획부가 하는 일은 대외사업국 내부 업무이다. 군인들의 군사훈련, 정치학습, 등을 매일 총참모부 8처에 보고하는 것이 주업무였다. 인민무력부 대외사업국은 6개 부의 한개 실, 한개 과로 구성돼 있다. 부서들로서는 의뢰부,(의전) 조직계획국, 대외문건작성국, 해외무관지도국, 대표단파견부, 외화벌이 부대담당 부서가 있다.
 
 
북한 군 작전국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많다. 작전국에 대해 설명해달라.
 
작전국은 총참모부에 소속돼 있지만 별개로 김정일의 지시를 받기도 했다. 군사문제와 관련하여 권력의 집중을 막고 분산시키려는 의도이다. 그래서 작전국은 일명 최고사령부 작전국이라고도 했다. 작전국은 군 작전, 행정을 총괄하는 국으로서 525군부대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1처부터 9처까지 있는데 1처는 내부 종합, 2처는 최고사령부처이다. 쉽게 설명한다면 최고사령관 명령, 지시만을 다루는 처이다. 3처는 전연군단 담당처이다. 1, 2, 4, 5군단이 포함돼 있는데 이 군단들을 전연군단이라고 한다. 4처는 후방지역 군단담당처이다.
 
5처는 특수부대 담당, 저격여단, 경보여단, 교도대지도국을 담당한다. 그 외에도 각 전연군단마다 산하에 저격여단, 경보여단이 있는데 그 여단들을 별도로 관리한다. 6처는 공군담당처이고, 7처는 해군담당처이다. 8처는 총참모부 직속 각 국 담당처이다. 인민무력부 안에는 도로국, 피복국, 철도국, 연유국, 수로국 등 총 40여개 국이 있다. 그 국들의 , 주, 월, 년 군사행정과 관련한 계획서를 기획작성한다.
 
9처는 훈련담당처이다. 총참모부 직속 국 단위들 밑에는 별도의 부대들이 있다, 중도화여단, 도로여단, 통신여단, 포병지도국, 탱크지도국과 같은 부대들 담당을 한다.
나는 처음에는 대외사업국 조직계획국에서 근무하다가 이후 해외무관지도국 부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해외무관지도국 부부장으로 일할 때 에피소드는?
 
쿠바 주재 무관이 쿠바 군 참모부와 사업을 잘해서 미군이 사용하는 대대급 무전기를 실물로 들여온 적이 있다.
 
 
북한 군부가 중동이나 아프리카 나라 용병들을 평양으로 불러들여 테러교육을 주었다는 설도 있다. 그에 대해 들은 적이 있나?
 
80년 중엽 때 중동 나라들의 군인들을 받아 훈련을 주었다. 평양시 상원군에 모란봉학원이 있었다. 중동 나라들과 아프리카 나라들의 군인들이 와서 게릴라 전문교육을 받았다. 그래서 김일성군사종합대학, 강건보병종합군관학교, 함경북도 경성군에 있는 비행군관학교, 김철주포병군관학교, 4개 군사대학에는 '외사부'가 있다.
 
중동, 아프리카 군인들이 와서 전문군사교육을 90년 초까지 받았다. 모란봉학원은 91년도에 없어지고, 그 자리에 로케트대학이 들어섰다. 대학들이 6, 7개정도로 축소됐다. 북한이 실제 테러교육을 주고 파견했는지 개인적으로 잘 모른다.
 
 
남한을 포함한 외부세계에선 북한 권력서열 2인자를 항상 군 최고 간부라고 한다. 이번에도 최룡해를 제2인자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북한에서 전혀 몰랐던 권력서열을 남한에서 알았다. 북한에는 2인자도, 3인자도 있을 수가 없다. 굳이 2인자라로 따지자면 최고상임위원장인 김영남이가 되어야 한다. 그 다음 인물은 내각총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바깥에선 그렇게 자꾸 북한 권력서열을 따지지만 북한 간부들이나 주민들은 그런 인식 자체가 서있지 않다.
 
왜냐하면 외부에서 보는 그 2인자, 3인자를 누가 앉히는가 하는 것인데 그것은 당 조직지도부가 하기 때문이다. 당을 떠나선, 좀 더 정확히 말한다면 그 당 안에서도 조직지도부를 떠나선 현재의 김정은도 존재할 수가 없다. 당 조직지도부가 중앙기관 국장 급 이상 인사와 함께 당 생활지도 명목으로 북한의 모든 당원들을 감시 관리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뉴포커스가 장성택 처형을 주도한 강경 핵심세력을 당 조직지도부라고 과감히 말한 점은 대단히 의미있고, 또 잘했다고 본다. 남한에 와서 왜 당 조직지도부가 북한 군부에 가려졌는지 많은 의문이 들었다. 이제는 진실하고 정확한 탈북자들이 북한학을 가르쳐야 할 때이다.  
 
 
당 조직지도부와 북한 군부의 주종관계에 대해 사례로 설명해달라.
 
당 조직지도부의 당 생활지도권한부터 말해보겠다. 1991년부터 김정일 지시로 북한 군 모든 장성들을 상대로 하는 당강습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그 당강습을 조직하는 부서가 당 조직지도부 13과이다. 당 강습소에 등록된 군 장성들은 보름 동안 자기 직무를 인계하고 중앙당 조직지도부 청사 안에 들어가 합숙하면서 사상학습, 사상검토를 받는데 심지어는 인사사업까지 그 안에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당강습을 진행할 때에는 제일 뒤에 조직지도부 군담당 13과 군 담당 부부장과 간부 담당 부부장이 같이 참석한다. 장성들에겐 그 두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얼굴들이다. 왜냐하면 강습 기간에 만들어진 보고서가 당 강습이 끝나는 대로 김정일에게 직보되기 때문이다.
 
1년에 한 번씩 하는데 북한은 장령이 많으니깐 한 회당 20명 씩 돌아가며 한다. 그 시스템 정착을 위해 91년도 총정치국 조직부 안에 당강습부가 신설됐다. 평양시 사동구역 송신동에 당 강습소가 있다. 참석 대상들은 연대장, 정치위원, 총참모부 부부장 이상 간부들이다. 연대장도 당 조직지도부 인사 제외 대상인 후방부대 연대장은 제외되고 전연부대 연대장들부터 참가한다.
 
 
당 강습 상황에 대해 좀 더 설명해달라.
 
당 강습소에 들어가면 일단 4명 씩 들어가 공동합숙하게 돼 있는 방을 배정 받는다. 식사공급은 최고이다. 먼저 총정치국 조직부 지도원이 내려와 평정서와 인사철을 갖고 뒤지면서 뭘 잘못했는지 반성하라고 한다. 총정치국 조직부 위로는 당 조직지도부가 있기 때문에 두려움의 존재이다.
 
당 강습 받는 조는 일회에 20명으로 구성되는데 나중에 강습이 끝날 때 쯤이면 그 20명 중 제일 죄가 많은 사람을 내세워 사상투쟁회의를 한다. 그때에는 당 조직지도부 군인사 담당 '간부4과'가 회의주석단에 앉는다. 그렇게 총정치국, 총참모부 간부들은 물론 군단장, 사단장, 전연군단 연대장들이 돌아가며 당 강습을 받는다. 
 
 
당 조직지도부가 군을 장악하고 있다는데 대해 구조적으로 설명해달라.
 
당 조직지도부가 갖고 있는 인사권, 검열권, 당 생활지도권에 대해서는 다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생략하겠다. 사례 중심적으로 설명한다면 그때가 1992년 12월이다. 김정일이 최고사령관으로 추대되고 나서 군 장성들 앞에서 "총정치국은 당 조직지도부가 인민무력부에 파견한 당 조직지도부의 한개 과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때부터 총정치국 부국장 이상 간부들과 총참모부 국장급 이상 간부들에게 김정일의 지시로 당 조직지도부 신분증을 주었다. 당 조직지도부 신분증이란 김정일의 신임을 대신하는 특권이어서 만능신분증이라고 한다. 당 조직지도부 당생활지도과 13과 사무실이 총정치국장 사무실 옆에 위치하고 있다. 거기에서는 매일 13과 지도원 2명 씩 나와 상주하면서 종합하여 김경옥 부부장을 통해 김정일에게 보고한다.
 
 
김경옥 당 조직부 제1부부장을 만난 적이 있나?
 
만난 적이 있다. 그때는 김경옥이 당 조직지도부 군사담당 부부장을 하고 있었다. 내가 탈북한 이후 그 자리에 리용철이가 올랐다. 그때 리용철은 김경옥 밑에서 당 조직지도부 군 인사담당 4과 간부과장이었다. 김경옥을 만난 시점은 88년이다. 그 해 구소련에서 반항공총사령관을 단장으로 하는 고위군사대표단이 방북했다.
 
초청목적이 북한 내 공군 및 반항공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해서였다. 대표단의 조언과 기술적 합의, 동향 자료들을 매일 2차례씩 김정일에게 보고하게 돼 있었다. 대외사업국 국장을 통해 모사전송 보고했다. 긴급 내용은 즉시로 작전국 2처를 통해 김경옥에게 전달됐고, 당 조직지도부에서는 다시 김정일에게 보고했다.
 
대표단의 하루 일정이 끝나면 새벽 시간에도 서류 결과보고를 작성해야 하는데 그게 참 힘들었다. 내가 안내 통역을 맡았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하루는 당 조직지도부에서 찾는다고 해서 공군사령부 작전부장과 함께 김경옥 사무실로 갔다. 
 
 
당 조직지도부 청사 위치며 사무실 내부구조를 정확히 설명해달라.
 
김경옥 사무실은 TV에서나 봤던 김정일의 업무청사라는 그 건물 3층에 있었다. 너무 의외였다. 솔직히 무력부 일개 국장 사무실보다 작고 볼품도 없었다. 응접실은 작았고, 탁자가 하나 있는 정도였다. 벽에는 긴 서재가 있었는데 그 안에는 온통 정치서적들 뿐이었다, 철제 사물함이 있었는데 키가 큰 김경옥 부부장이 허리를 깊이 숙일 만큼 작았다.
 
조금 색다른 물건은 4대의 까만 전화기였다. 버튼 식이 아니라 손가락으로 돌리게 돼 있는 다이얼 전화기였다. 전화기 뒤에는 작은 안테나 선 같은 것이 달려 있었는데 빨간 조명등이 끝에 있었다. TV는 일본 제품인 토시바였다.  
 
 
김경옥과 무슨 말을 주고 받았나?
 
김경옥은 대외사업국 보고서를 봤는데 몇 가지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이 있어 확인 차원에서 불렀다고 했다. 용어라던가, 해당 사항의 용도라던가, 그런 것들을 꼼꼼이 체크했다. 장군님께 보고드릴 때 혹시나 물어보실까봐 자기부터 제대로 이해하고 싶다고 했다. 김경옥은 총정치국, 총참모부가 주최하는 대회의에서도 언제나 주석단 한 쪽 끝이나 뒤에 앉는다. 
 
그러나 참석자들은 항상 주석단 가운데를 의식하지 않는다. 회의가 있을 때마다 당 조직지도부 간부들이 회의 주석단 어느 자리에 앉아있는가부터 신경 쓴다. 왜냐하면 그들이 앞에 나와 주도하는 회의가 될 경우 사상투쟁이라던가, 반드시 누가 숙청되는 엄한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다.  
 
 
당 조직지도부가 주도하는 군 회의 중 가장 인상 깊었던 회의는?
 
그때가 93년이다. 평양주재 이란 회교혁명근위대 대표가 이란 군대절에 즈음해서 옥류관에서 연회를 주최했다. 군 간부들이 참가했는데 주빈으로 인민무력부 부부장이던 대장 김광진, 공군 및 반항공사령관 조명록, 총정치국 선전담당 부국장 박재경, 그 외 장성들까지 합쳐 총 7명이 참가했다.
 
회교이기 때문에 그 연회에서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 그런데 대표가 연설하면서 "조선혁명의 최고지도자인 김일성, 김정일동지의 만수무강을 축원합니다. 아울러 오늘 연회에 주빈으로 참가하신 김광진, 조명록, 박재경동지의 건강을 축원합니다."고 했다.
 
대표가 연설하는데 도중에 박수칠 수 없지 않나, 그래서 마지막 사람들의 이름을 다 부르고 건강을 축원하는 대목에서 박수를 쳤는데 바로 그게 문제가 된 것이다.  그 자리에 참석했던 총정치국 소속 인민무력부 보위사령부 과장이 김일성, 김정일 건강을 축원할 때에는 박수를 안치다가 김광진, 조명록, 박재경 건강을 축원한다고 하자 마지막 그 대목에 박수를 쳤다고 자기 라인을 통해 김정일에게 직보했다.
 
김정일이 대노했다. 당장 당 조직지도부가 검열하라고 명령이 떨어졌다. 13과가 일주일 동안 대외사업국에 내려와 조사를 했다. 그 결과를 갖고 사상투쟁회의를 진행했다. 인민무력부 2호청사에 회의실이 있는데 참석자들은 물론 대외사업국, 외교 중견간부들이 다 참가했다.
 
주석단에 최광이 앉고, 김경옥이 앉았다. 회의 사회는 김원홍이가 봤다. 그 당시 김원홍은 장령급 대좌였다. 기구상 지위로 봤을 때에는 대좌지만 조직 파워는 한 등급 높은 소장이라는 뜻에서 북한 군부에만 있는 우대칭호이다. 김원홍은 총정치국 조직부 부부장이었는데 군 내 보위사령부, 재판부, 검찰국 사법담당 부부장이었다. 연회 참석자들인 김광진, 조명록, 박재경이가 연단에 나가서 울면서 자기비판을 했다.
 
 
그때 주석단의 김경옥은 뭘 했나?
 
그냥 묵묵히 앉아 있었다. 아마 그도 연회 분위기를 충분히 이해하고, 다만 김정일 지시가 있었기 때문에 형식적으로 사상투쟁회의를 주도하는 것 같았다. 조명록, 김광진, 박재경 밑에 있는 사람들이 일어나서 거센 목소리로 비판했다. 김정일 지시로 진행되는 사상투쟁이라 분위기가 최고로 엄숙해야 하는 탓에 미리 짜고 비판하는 것이 아니었나 싶었다.
 
김경옥은 마지막까지 말이 없었고, 리용철이가 경고 식으로 회의 마감을 했다. 그 회의 분위기나 자아비판, 호상비판 수위를 종합해서 김경옥이가 김정일에게 보고했다. 아마 그 연회가 이란이 아닌 국내 기관 주최 연회였다면 참석자들 모두가 목이 날아났을 것이다.  
 
 
총정치국과 인민군당위원회와의 관계를 설명해달라.
 
인민군당위원회란 한마디로 북한 군인 당원들의 당위원회란 뜻이다. 대체로 군 최고 권력자가 맡는다. 김정일 사망 한 이후 총참모장 리영호가 인민군당 책임비서를 겸직했었다. 그때는 조명록 사망으로 총정치국 국장 자리가 공석이었기 때문이다. 인민군당 책임비서 자리를 누가 가지는가에 따라 군 권력 지위가 결정된다. 총정치국의 임무는 인민군당위원회에서 토의 결정된 것을 행정적으로 잘 진행시키는 것이다.
 
조선노동당 조직지도부는 인민군당을 통해 지도한다. 그래서 앞에서도 말했듯 김정일이 총정치국은 인민군대 안에 있는 당 조직지도부 소속 일개 과와 같다고 말한 것이다. 때문에 북한 군 장성들이 제일 겁을 먹는 검열이 당 조직지도부 검열이다. 중앙당 검열은 사단, 이하 부대만 한다. 사단 이상 군단, 그 위로만 당 조직지도부가 검열하는데 그때에는 총정치국, 총참모부 그 어느 간부도 즉석에서 해임시킬 수 있다. 그런 회의들에는 당중앙위원회 군사부도 동행한다.
 
 
당중앙 군사부는 어떤 조직인가?
 
당중앙위원회에 있는 행정부서로서 당의 군사노선과 정책대로 훈련과 전투진행을 제대로 하는가? 항시 감시 관리하는 부서이다. 당 조직지도부 검열은 사상 검열만이 아니라 군행정 검열도 포함돼 있기 때문에 군사부가 동행하는 것이다. 
 
 
얼마 전 김정일 추모행사 주석단에 항일투사 황순희가 앉은데 대해 우리 언론들에서 많이 주목 했었다. 황순희에 대해 아는 점이 있나?
 
북한 언론을 보고 북한 내부를 진단하는 것처럼 잘 속는 짓이 없다. 일례로 어느 간부가 얼마큼 많이 김정은과 동행하는가에 따라 파워 순위를 점치기도 한다. 그런 식으로 최룡해가 제2인자라고도 한다. 솔직히 스키장이든 아파트 건설이든 북한 내 주요 건설은 거의 군대가 다 주도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공짜 인력이 아닌가, 다른 사회 노동력은 먹고 살기 바빠서 직장까지 이탈해서 시장에 나가기 때문에 동원도 쉽지 않다.
 
군대가 하는 일이어서 김정은 현지시찰 때마다 총정치국장이 따라다닐 수밖에 없다. 북한의 내부적 실상을 제대로 알고 분석해야 하는데 언론이 아는 척하느라 별의별 분석방법을 다 동원한다는 느낌이 든다. 황순희도 마찬가지다. 혁명1세대인 항일투사들에 대한 상징적 존중이고 그 선전을 위한 생존자일 뿐이다. 황순희 사위는 김정일의 서기실장이던 김창선이다. 황순희의 딸 유춘옥의 남편이었는데 유춘옥은 김경희의 서기였다.
 
부인이 사망할 때 김창선은 외국출장 나가 있어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했었다. 그것도 화가 나는데 딸이 죽은지 한 달만에 김창선이 새 장가를 갔다. 소문에 의하면 김정일 기쁨조에서 무용하던 여자라고 한다. 당 조직지도부 간부들이 두 번이나 찾아와 김창선의 결혼과 관련하여 황순희를 설득했다.
 
황순희 조카가 대외사업국 부장을 했는데 설날에 갈 데가 없자 대외사업국 가족 신년회에 놀러왔었다. 그 자리에서 당 조직지도부 사람들이 자기를 설득할 때 서러워서 울었다고 하면서 막 화를 냈다. 듣는 사람들도 겁을 먹고 그 자리를 피했다. 김창선 실장의 동생 김창구는 내가 탈북하기 전까지 북한 군 재판국에서 근무했다. 원래 호위사령부에서 차량관리자 대위로 있다가 재판국으로 옮겨왔다.
 
 
이번 장성택 처형을 계기로 현재 북한 군 고위급 인물들 중에서 숙청 가능성이 있는 인물이 누구인가?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현 정찰총국장 김영철이다. 김영철의 본명은 김동수이다. 88년 장성택의 형 장성우가 정찰국장으로 있을 때 그 밑에서 부장으로 있으며 비서처럼 쫓아다녔다. 김영철을 남북군사회담에 내세워 준 사람도 장성우였다. 그 회담 녹화물을 보던 김일성이 똑똑한 사람이라고 칭찬하면서 회담 가명인 김영철의 이름까지 칭찬했다. 
 
김일성이 자기도 빨치산 무장투쟁을 할 때 이름을 두 세개 씩 갖고 있었다며 아예 김영철로 이름을 가지라고 교시하는 통에 그의 이력서에도 김영철로 기록돼 있다. 김영철은 중국에 친인척들이 있어 출신성분이 남들보다 뒤진다. 그래서 인민무력부 외국어강습소에서 중국어 전공을 하고 중국 주재 군사 무관으로 해외에 나가는 것이 꿈이었다. 내가 근무하던 대외사업국에도 줄을 대어 다녔지만 끝내 불발되고 말았다. 
 
그랬던 김영철을 이리저리 밀어준 사람이 장성우였다. 장성우가 정찰국장에서 해임되어 김일성고급당학교 중앙당 재교육반에서 한 달 공부한 뒤 사회안전성 정치국장으로 갔을 때는 사회안전성으로 옮긴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러나 장성우가 평양시 위수사령부 격인 3군단 사령관으로 옮겨가면서 그냥 군에 남게 됐다. 김영철이 정찰총국장에 오른 것도 아마 장성택의 후원이 컸을 것이다.
 
 
최주활 회장은 국가안보전략연구소를 정년퇴임하고 현재는 탈북자동지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 새로운 경험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현재 탈북자 2 5천명이 한국에 왔는데 구성 성분을 보면 간부급도 있고, 최하층도 있다, 또한 남자보다 여자가 더 많다. 여기 온 탈북자들이 출신성분도, 탈북 동기도 서로 다르다. 남한에서 생활형편이나 처지도 각자 다르다. 생각도 다 다르다. 단체를 운영하는데서 단합하는데 좀 어려운 점이 있다. 단체의 재정적인 자립도 어렵다.
 
탈북자동지회는 우선적으로 탈북자들의 단합에 노력할 것이다.  탈북자동지회 좌우명은 헌신, 투쟁, 초석이다. 탈북자들의 성공적인 정착과 화합과 단합을 위한 헌신, 김씨일가 왕조체제에 반대하는 투쟁, 그리고 안보의 초석이다. 이 3대 좌우명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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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12-29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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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티콘 이미지  michael   ( 2013-12-30 )    수정   삭제 찬성 : 21 반대 : 37

북한체제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되는 좋은 기사에 감사한다.
북한 당 조직지도부의 실세인 강경파는 지난 20여년간 변함없는 권력을 지켜왔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김정일때와 지금의 차이는 조직지도부를 만들어 스스로 그 위에 절대 권력으로 호령할 수 있었던 것이 김정일이라면 통치 경험과 권력형성 기반이 미약한 김정은은 조직지도부가 떼메고 가는 가마를 타고 이끌려 가고 있다고나 할까. 기사 내용으로 판단컨데 지금껏 해온대로 조직지도부의 실세들은 북체제 옹립을 위해 앞으로도 충성할 것이고 아마도 김정은을 옹위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간과해선 안될 것은 체제 유지의 급소인 절대 권력이 아직은 부재(不在)인 점이다. 다시 말해 김일성-김정일 이래 북한 권력체제는 지금 가장 취약한 시기를 맞은 셈이다. 이런 상황이면 북의 체제와해는 원한다면 별 어렵지 않게 이룰 수 있다. 문제는 구체적 이유와 시기(時期)다. 그 열쇠를 누가 쥐고 있는가를 이해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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