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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사회
탈북문학

'포 플라워' 제 26화

이지명 작가

글 | 신준식    필자의 다른 기사 보기

포 플라워 (four flower)
-작가 소개-
 
이지명
 
전 북한작가
청진1사범대학 어문학부 통신대학 1985년 졸업.
작가동맹 현직 작가로 있다가 2003년 탈북 2004년 대한민국 입국
한국소설가협회회원,
 
Intro
북한망명작가 이지명의 장편소설 <포 플라워, four flower>.
2014년 11월 10일부터 뉴포커스에서 연재를 시작합니다.
연재에 앞서 이 작품에 대한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이 소설은 김정은의 첫 사랑이었던 주인공 서재은의 복수를 통해 북한정권 내 실세들의 권력암투의 추악함과 독재정치의 비정함을 그려낸 소설입니다. 소설은 북한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들과 실존 인물들에 기초해 이야기를 펼쳐갑니다. 단 김정일과 김정은을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은 실명에서 조금씩 변형된 이름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제가 이 소설을 쓰기로 마음을 먹은 이유가 있습니다.
자유롭게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나갈 수 없는 불합리한 체제 속에서 사상과 노선에 목숨을 걸어야만 하는 인간의 운명은 도대체 얼마나 비참해질 수 있는지를 그려 보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소설 속 여주인공 서재은은 북한에서 살아가야 하는 가장 평범한 존재를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그녀는 한때 열렬히 사랑했던 자신의 첫 남자 김정은을 죽이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칩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녀가 복수를 이루어 내는 모든 과정을 저는 이 소설에서 그려가려고 합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통해 북한의 현 정권 실세들이야말로 수천만 인민들의 몸과 영혼에 서식하는 기생충과도 같은 무리임을 증명해 보이고 싶습니다. 불과 수십 킬로도 떨어져 있지 않은 저 휴전선 너머에서 벌어지는 참상과, 소위 ‘최고 존엄’이라 일컬어지는 존재의 실체와, 그 기이한 실체를 떠받치고 있는 이상한 집단의 진면목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북한으로부터의 망명 작가들만이 알 수 있고, 전할 수 있는 이런 이야기를 통해, 이곳의 독자들이 ‘인간’을, ‘인간의 삶’을. 그리고 ‘인간의 삶의 가치’를 다시 한 번 사유하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피를 찍어 쓰는 심정으로 연재를 시작하는 장편소설 <포 플라워, four flower>에 독자 분들의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14년 10월 20일 부악문원에서 이지명
 
목차
1>상처의 반란
2>참정의 눈
3>대장 집 안방
4>무도의 총소리
5>허탈
6>마지막 진술
7>딸을 찾는 아비
8>충신의 내면
9>음모의 합작
10>서재은의 계략
11>군중반향
12>현송원의 마지막 인사
13>3인방의 힘
14>다섯 번째 핀 사화
15>안개의 유혹
16>아방궁의 총성
17>겉과 속
18>여자의 향기
19>3인방의 정체
20>응당한 피해자와 억울한 피해자
21>하늘에 던져진 발자취
22>두 여자
23>김원흥의 역습
24>시련의 언덕
25>반전의 여인
26>개들의 개싸움
27>사화 여섯 번째로 피다
 
<26> 개들의 개싸움
 
조연진이 최용회의 자결소식을 보고 받은 것은 다음 날 오후쯤이다.
그는 피식 선웃음을 쳤다. 최용회다운 죽음이라고 내심 감탄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죽음으로 해서 최용회는 주변에 붙어 있는 가족들을 살리려 했던 것 같다. 가상하도다. 네가 네 주제를 알고 그리 죽었다면 네 죽음을 더 이상 비참하게 만들지는 않을게, 내 속도 그리 좁지는 않으니까, 그는 혼자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장례는 소문 없이 조직부에서 치러 줘야겠군. 명색이 비서니까,,,”
 
현송원의 출현을 두고 속을 끓인 것은 비단 김원흥이나 그녀의 처형을 집행할 명령을 받았던 보위부관계자들만이 아니었다. 아마 그 모든 사람들의 불안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큰 불안을 안은 것이 바로 이설희였을 것이다.
현송원이 화염방사기에 타서 아예 재가루가 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환희보다 배가 된 불안이 그녀를 덮쳤다. 그러지 않아도 요즘 새 계집을 끼고 아랫도리가 다 빠져버릴 만큼 정신이 없는 김정은을 두고 앙가슴을 태우던 설희었다.
그깟 계집 백을 끼고 논들 그런 것으로 시기를 하고 애를 태워 중한 육체를 부식시켜 버릴 정도의 속통을 갖고는 이 자리에 앉아 있을 감이 못 된다는 것쯤은 설희도 알고 있다.
하지만 머릿속을 휘젓는 시기와 질투는 고도의 치밀성을 가지고 알고 있다는 그 참을성을 무차별로 짓뭉개 버린다.
설희도 정은이가 순정파라는 것을 잘 안다. 문제라면 그게 문제다.
첫 여자가 됐다면 몰라라 아닌 이상 평생 첩 대접을 받아야 하는 만큼 그걸 이겨나간다는 게 설희에겐 죽기보다 싫다. 그래서 계책을 꾸며 죽여 버렸는데 현송원이 다시 살아서 돌아왔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죽은 것처럼 꾸며서 꼭꼭 숨겨 놓았다가 때가 되니까 다시 내놓았다는 것인가? 답답한 가슴을 진정할 길 없어 오늘 설희는 교외별장에 나와 있다는 김원흥을 직접 찾아왔다. 전화로 물어도 되는 일이었지만 울화가 치밀어 한바탕 행악질을 하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이렇게 몸소 찾아 나온 것이다.
응접실에서 마주앉은 두 사람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무슨 변명이라도 하길 바랐는데 김원흥의 태도가 하도 덤덤해 그녀는 울컥 역기가 치솟았다.
“나에 대해 무슨 오해라도 갖고 있나요?”
이설희의 첫 물음이다. 김원흥은 픽, 웃었다. 하지만 더 이상 침묵을 지키지는 못했다.
“사모님이 오늘 왜 저를 찾아 왔는지 제가 다 압니다. 하지만 이건 나로서도 어쩔 수 없었던 일이 아닙니까?”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요? 어째서 죽었다던 사람이 다시 살아났나, 이거예요. 혹 가짜로 위장했던가요?”
“아마도 그런 것 같습니다.”
“이것 봐요, 부장님 그런 것 같다니요. 그게 무슨 뜻입니까? 처형은 보위부에서 진행한 거 아니었어요?”
“원수동지께서 그리하신 것 같은데요. 전들 뭐 어쩌겠습니까?”
“그럼 지금까지 송원인 어디에 숨어 있었나요.”
“그것도 저는 모릅니다. 제발 더 묻지 마십시오.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이설희는 어떤 고민에 휩싸인 것 같은 김원흥의 어두운 안색을 살펴보고서야 성급했던 행동을 후회했다.
언제 보나 당당하고 야심차던 보위부장의 모습이 아니었다.
사내들이 마음상해 할 땐 그 마음을 어루만져 줘야 바라던 목적을 이룰 수 있다.
화를 내 듯 성급함은 금물임을 그만 깜박했다. 부장 못지않은 괴로움은 그에게도 있어 어쩔 수 없이 내비친 것이긴 하지만, 이설희는 동정어린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말 못할 고민이 있나요?”
“있습니다. 지금의 나의 심정은 무엇이나 마구 두드려 부시고 싶습니다. 사모님 심정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깟 현송원 따위가 다 무엇이겠습니까?”
“?”
분명 뭐가 있다. 그러지 않고야 냉정이 직업인 이 사람이 이리도 격할 순 없는 것이다.
성큼 일어선 설희는 풀떡 대는 김원흥의 목을 살며시 그러안았다.
“사모님 왜 이러십니까? 이러시면 안 됩니다.”
“잠간 이러고 있어요. 별일이야 있겠어요. 아저씬 그래도 저를 위해 많이 애써 오신 분이 아니에요.”
“그래도 이러시면 안 됩니다. 벽에도 눈이 있는 무서운 세상입니다.”
김원흥의 머리엔 그 순간 최용회의 은밀한 행위가 적나라하게 찍혔던 사진이 얼핏 떠올랐다.
“알았어요. 그럼 말해줘요. 분명 무슨 일이 있죠?”
이설희는 다시 자리에 앉으며 다정하게 말했다.
“원수동지에겐 사모님도 현송원도 아닌 첫 여자가 있었어요. 그 여자가 누군지 아십니까?”
김원흥은 자세히 설명했다. 중이동 아지트에서 유진우사건을 만들며 김정은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그의 말을 듣는 설희의 눈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널 반드시 죽여 버리겠다는 쪽지까지 보내며 이를 간 여자에 대해 말씀하시면서도 원수동지의 눈엔 그리움이 가득 어려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라 내 눈은 속이지 못합니다. 그 여자를 아직 잊지 못하고 있었단 말입니다.”
“이젠 십 수 년이란 긴 세월이 흘렀는데 살아있는 것을 확인한 것도 아니고 걱정할 건 없지 않아요. 그립다는 그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그 여자가 지금 나타났어요. 아직 원수동지와 만나지는 못했지만,,,”
“예? 그게 정말이에요?”
이설희는 너무 놀라 가슴에 두 손을 모아 쥐었다.
“제가 체포했습니다. 아직 살아 원수동지와 만날 꿈만 꾸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지금 중이동에 갇혀 있습니다.”
“그래요?”
설희가 우뚝 자리에서 일어난다. 잠시 방안을 거닐며 무언가 생각하던 그녀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며 김원흥을 쳐다본다.
“그 여자를 죽여 버려요. 내겐 현송원이도 버거워요. 네?”
“한 가지만 말씀해 주시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뭘요 말씀하세요.”
“부임 첫날 원수동지의 주머니에서 나왔다는 메모지 말입니다. 유진우는 그 메모지의 진실을 쫓다가 지금 체포돼 갇혀 있습니다. 그만한 충신도 없었는데 말입니다.”
이설희는 빤히 그의 얼굴을 직시한다.
“나를 의심하는 건가요?”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확신합니다. 그런 메모지는 집안분이 아니고서는 원수동지의 주머니에 넣어 놓기엔 무리입니다. 그냥 내 추리일 뿐입니다. 아니면 말구요.”
“확신한다면서요?”
“아니라면 아닌 거지요.”
“맞아요. 내가 그걸 신문지에서 글자를 오려 붙여 만들었어요.”
“왜 그랬습니까?”
“다 그 빌어먹을 현송원이 때문이죠. 질투로 인한 협박일 뿐이었습니다. 다른 뜻은 없어요.”
“그 심정 알만합니다. 알겠습니다. 내가 서재은일 죽여 없애겠습니다. 원수동지의 눈에 뜨이기 전에,”
김원흥은 입술을 깨물었다.
“송원이는요? 그년도 없앴으면 원이 없겠어요.”
“이미 원수동지의 눈에 박힌 여자입니다. 저로선,,, 감수해야 할 겁니다. 만약 죽여 버린다 해도 또 다른 여자를 만날 것 아닙니까?”
“부장님. 그렇다고 속수무책으로 가만있어야 합니까? 그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사내들이란 참, 왜 한 여자의 애끓는 심정을 그리도 몰라줍니까? 다른 건 다 이해할 수 있어요 어떤 여자라도 제 남편이 다른 여자와 잠자리를 같이 하는 건 용서할 수 없는 거예요 다른 여자를 만난다면 그년도 다 몽땅 죽여 버리면 되잖아요. 으흐흐”
이설희는 끝내 자리에 주저앉으며 통곡을 터트렸다.
하지만 김원흥은 그러는 이설희를 아니꼽게 내려다보았다. 마지막 끈마저 속절없이 끊어져 버린 허탈감이 온몸에 칭칭 감겼기 때문이다.
사실 김원흥은 메모지의 작성자가 이설희가 아니길 바랐다. 그녀임을 짐작은 했지만 만약 아니라면 진범을 잡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어쩌면 참정을 하는 조직지도부의 소행이었으면 하는 바람이기도 했다.
만약 그랬다면 뚜렷한 명분과 증거를 가지고 그 자들에 대한 소탕작전을 벌일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김정은에게 미련이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이미 타락해 지도자는커녕 사람 줄에도 세우지 못할 얼간망둥이에 지나지 않는다.
그로서는 그렇게밖에 평가할 수 없었다. 이설희를 겨우 진정시켜 귀가 시키는데 상당한 애를 먹었다. 만약 김부장이 못하면 내가 나서서라도 첫 여자인지 뭔지 칼 탕쳐 죽일 거라며 부득부득 이를 간다. 현송원도 마찬가지였다.
이설희가 돌아간 후 그도 곧 본부로 돌아갔다. 차안에서 그는 최용회를 생각했다.
그가 그렇게 죽을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쥐도 구석에 몰리면 고양이에게 덤빈다는데 아니, 아니 최용회로서는 그렇게 죽는 것이 오히려 장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어떤 경우에도 그는 죽어야 할 죄를 지었으니까,,,
김원흥은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여러 보고를 건성으로 받으면서 생각을 굳혔다.
최용회처럼 그렇게 무맥하게 죽을 수 없다는 결심이 확고한 만큼 그깟 보고 같은 것에 연연할 그가 아니었다.
오전 열시쯤에 그는 직접 차를 몰고 중이동으로 왔다.
들어서자마자 서재은과 유진우, 차용녀에 대해 알아봤다. 아직 지하 감방에 있다는 말을 듣자 의아한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당조직지도부에서 무슨 연락이 없었냐고 책임자에게 물었지만 그는 심상히 그런 것은 없었다고 한다.
(흥, 토사구팽인가? 그러면 대체 뭐야 또 날 보고 죽이던지 살리던지 하라는 건가? 그럼 보란 듯이 공개 처형을 한 번 해봐?)
잠시 생각을 하던 그는 이내 무언가 결심한 듯 수화기를 들었다. 그런데 그가 수화기를 들기도 전에 따르릉- 먼저 신호가 왔다.
“예 보위부장 김원흥입니다.”
“나요, 조연진이요. 복귀를 축하하오.”
정말 귀신같은 존재다. 은밀하게 움직였는데 여기 온 걸 또 어떻게 알았다는 것이지? 그럼 여기에도 그의 스파이가 잠적해 있다는 말인가?
“네 휴가를 마치고 방금 돌아왔습니다.”
“어떻소. 오늘 저녁 술 한잔 하고 싶은데 시간이 되겠소?”
“네. 알겠습니다,,, 그 집으로 가겠습니다.”
수화기를 놓은 그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개자식, 내가 무슨 네 품에 안겨 재롱이나 떠는 강아지로 보이는 거냐?
담배를 피워 문 다음 신경질적으로 빨고 나서 발 가는 대로 지하로 내려오던 그는 계단에 서서 무언가를 생각했다. 바짝 타들어간 담뱃불이 손가락을 지지는 줄도 모르고 생각하던 그가 앗따따 하고 꽁초를 떨어뜨리는 순간 무엇인가 섬광처럼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그래, 그렇게 해보자)
철문을 열고 들어선 김원흥은 먼저 유진우를 찾았다. 독방에 멍해 앉아 있던 유진우가 그를 보자마자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다. 한참 그를 보며 또 뭔가 생각하던 김원흥은 손가락을 딱 튕기며 다가갔다.
“어떻소. 견딜 만 하오?”
유진우에게 하는 이런 질문이 아마 두 번째인 것 같다.
“예 아직 깊은 조사는 없었으니까요”
어쩌면, 대답마저 똑 같다. 김원흥은 피씩 웃었다.
“우리 술 한 잔 할까?”
“예?”
“술 말이야, 못 마셨을 거 아니요”
“아, 그러면야 좋지요. 그런데 내년 오늘이 저의 제삿날인가 보죠?”
“아니, 아니 그런 뜻이 아니야. 여, 계호원?”
“옛”
“내 명의로 후방부에 가서 안주와 술을 좀 가져오게”
“알았습니다.”
계호원이 나가자 “잠간만” 하고는 다른 감방들을 두루 돌아보았다. 모두 머리를 숙이고 기척 없이 앉아 있다가 그의 눈길이 가자 머리를 들며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모두 독방이었다.
중간 문을 열고 여자감방 앞에 와서 그는 차용녀를 찾았다. 앉아 있던 용녀가 그가 일어서라고 하자 이내 일어선다. 두루 용녀의 몸을 살피던 그가 불쑥 물었다.
“몇 개월인가?”
“네, 석 달 반입니다. 어떻게 알았죠?”
“나도 아버지요.”
용녀의 배가 조금 부풀었다. 엉덩이도 펑퍼짐해 지고,
“애 아버지는 임신 사실을 알고 있소?”
“모르죠. 총각이잖아요 이런 데선 아직 철부지죠”
“아무래도 여기 들어온 이상 살아서 나가지 못할 텐데 참 불우한 운명을 지닌 아이야. 미안하지 않소?”
“그러게요.”
용녀의 입이 비죽비죽 하다 끝내 주저앉아 왕, 울음을 터트린다. 김원흥은 다시 중간 문을 되나와 유진우에게로 왔다.
마침 계호원이 꾸러미를 들고 들어오자 아예 철창문을 열라고 했다. 그는 유진우가 앉은 안에 들어와 마주앉았다. 바닥은 마루로 되어있었다.
안주로는 삶은 통닭이 들었다. 가져 온 컵에 대평주를 한 잔씩 따르면서 김원흥은 유진우를 슬쩍 바라보았다. 그가 침을 넘긴다.
“자, 들게”
둘은 같이 한 잔씩 마셨다. 몇 순배 그렇게 돌고나서 닭을 찢어 유진우의 손에 쥐어주며 김원흥은 씩 웃었다.
“이거 공짜 아니네.”
“알고 있습니다,,, 예에?”
“아, 아 놀랄 건 없고, 한때 수령의 책임부관이었던 사람이 이렇게 철창에 앉을 일이 있으리라고는 생각 못했겠지?”
“뭐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겠지요. 이게 마지막 술잔이면 좋겠는데,,,”
유진우가 뭔가를 떠보듯 슬쩍 말한다.
“그렇게 죽고 싶소?”
“죽고 싶은 사람이 어데 있습니까. 죽으라니 어쩔 수 없이 죽는 게지요.”
“참 그 배포가 부럽소.”
“근데 오늘 왜 이럽니까?”
“그러고 싶어서 말이요. 감방에 직접 앉아보니 감회가 새롭소.”
“언제 앉아 본 적 있습니까?”
“15년 전 쯤 되나? 그땐 지방 보위부에 있었는데 뜻하지 않은 일로 감방에 앉아 봤지 며칠이긴 하지만 말이요. 뭐 보위부 실정을 잘 아는 터여서 꼼짝없이 죽었구나 하고 생각하니까 막 지랄이 나가는 거 있지. 허허허”
“?”
“자 또 한잔 받소.”
유진우는 받으면서도 김원흥의 눈을 직시한다.
“어서 말씀하십시오. 또 제가 할 일이 있습니까?”
“있긴 한데,,,그건 좀 천천히 말하고, 어떻소? 아버지가 될 기분이,”
“예?”
“이런, 이런 용녀아주머니가 임신을 한 거 몰랐소?”
“?”
“석 달 반이라던데,,, 살아야겠지, 둘 다 죽어서는 안 되겠지, 안 그렇소? 말해보오”
김원흥은 돌처럼 굳어진 진우를 여겨보며 넌지시 묻는다. 유진우의 잔을 쥔 손이 후들후들 떨렸다.
“어차피 죽을 목숨인데 애를 품은 여자야 살려야지 그게 남자가 할 일이 아닌가? 잘 생각해보게”
“어떤 일을 하면 됩니까?”
“내가 지적해 준 놈을 없애면 되네. 그럼 여자는 이제라도 내보내 주겠네. 이것 참 믿을 놈이 있어야 말이지.”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만 내가 죽으면 연좌제로 용녀도 아이도 다 죽을 게 아닙니까?”
“이런, 그 여자는 지금 자네와 아무상관 없네. 나 혼자 아는 것뿐이야. 할 수 있겠나?”
“약속할 수 있겠습니까?”
“약속하네. 남자로서 말이야”
“좋습니다. 하겠습니다. 지금 용녀를 내보내 주십시오. 잡혀왔다는 애들도 다”
“잘 생각했네. 사랑이 무엇인지 내 가슴이 다 울렁거리는군, 근데 언제 그렇게 깊어졌나?”
“모르겠습니다. 아마 운명인가 봅니다. 자 한 잔해요”
마지막 남은 술을 부어 둘은 잔을 부딪치고 단숨에 마셔버렸다.
김원흥이 일을 서두른다는 것이 대뜸 알렸다.
용녀는 즉시 풀려 나갔다. 나가면서 철창 안에 있는 유진우를 바라보며 눈물을 지었다. 유진우는 손을 흔들었다. 감방 규정에 의해 한마디 말도 못했지만 주고받는 애틋한 눈길로 모든 것을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용녀가 사라지자 유진우는 가슴이 뻐근했다. 배가 부른 게 그의 초짜 눈에도 알렸다.
이제는 용녀를 위해 어떤 일이든 해낼 용기가 생겼다. 그는 큰 기지개를 켜며 심호흡을 했다. 언젠가 하늘에 대고 결심한 것이 있었다. 다시는 남을 위해 더러운 발자국을 찍는 일은 없을 거라고, 누구든 믿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건 지나온 그의 책임부관 시절이 잘 실증해 주었다. 그는 피 나듯 입술을 깨물며 다음 공정을 생각했다. 온몸에 힘이 솟았다.
그건 자신의 한 몸을 내대 무엇인가 해야 하는 이유가 선명하게 생긴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행동이기도 하다.
오후 네 시 쯤 유진우는 다시 바깥공기를 마실 수 있었다.
김원흥을 만나고 할 일에 대해 듣고 난 후 용녀의 집으로 곧장 달려온 유진우는 품에 달려드는 여자를 잡고 한참 뭐라 귀에 대고 속살거렸다. 용녀도 고개를 끄떡였다.
무엇이나 제꺽 알아차리고 곧 실행에 옮길 줄 아는 여자다. 나가려는데 용녀가 그를 안방으로 끌어들였다. 벙긋 웃으며 옷장에서 검은 양복을 꺼내 입으라고 눈짓한다.
몸에 대보고 나서 유진우가 히죽 웃는다. 속옷과 검은 내의도 꺼내 내민다.
유진우는 와락 여자를 한 번 안아주고는 이내 속옷을 들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 사이 용녀는 부엌에서 쌀을 씻어 전기솥에 앉혔다.
저녁 8시 경 검은 양복을 입은 훤칠한 사내가 지하철에 들어섰다.
급한 걸음 같았다. 손 짐 보관함 앞에 온 사내는 주위를 한 번 둘러보고 나서 상단의 308번 짐 함을 열어젖혔다. 작은 손가방이 놓여 있다. 쟈크를 열고 안을 들여다본다. 안에는 권총 한 자루가 들어 있다. 재빨리 그걸 꺼내 품에 건사한 다음 사내는 이내 돌아 나와 마침 들어서는 지하전동차에 몸을 실었다.
 
간간하게 울리는 음악소리가 참 부드럽다. 내부 장식이 잘된 고급레스토랑이다. 몇 군데 앉아 있는 홀의 손님이 보였다. 안쪽에 밀실처럼 치우친 방도 보였다.
그 방에서 지금 조연진과 김원흥이 위스키 병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 방에까지 홀의 음악소리는 흘러들지 못했다. 어쩌면 방음장치가 되어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이 레스토랑은 아무나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아닌 것 같다.
이미 인사치레는 지나간 듯 조연진이 한마디 한다.
“난 부장동무가 그런 방법으로 최용회를 죽게 할 줄은 몰랐소. 역시 김부장은 보위부장으로서는 손색없는 적임자요.”
“아닙니다. 조부장님이야말로 세상 누구도 따를 수 없는 노련함을 가진 분이지요.”
“그건 어떻게 하는 소리요?”
“서재은일 선우향으로 가장시켜 최용회에게 보낸 것 말입니다.”
그쯤 말이면 조금 놀라기라도 하련만 조연진은 꿈쩍도 안한다.
“알고 있었소?”
“보위부장이 모르면 안 되는 일이잖습니까.”
“그렇군, 허허허 근데 말이요. 그건 내가 고안한 것이 아니라우. 서재은 그 애가 생각해낸 것이지.”
“체포된 날 서재은이가 카메라를 빼 돌리지 못했다면 어쩌려고 했습니까?”
“글쎄요. 뭐 다른 방법이 있었겠지, 어차피 우리의 목표가 된 이상 살아서는 안 되는 일 아니요?”
“저도 목표에 들었는가요?”
“음”
조연진은 이윽히 김원흥의 표정을 살핀다. 김원흥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이제 술자리가 끝나고 밖으로 나가는 순간 그는 유진우의 총에 목숨을 끊길 것이다. 그런 것도 모르고 지금 허세를 부린다고 생각하니 가소로운 기분을 억제하기 힘들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조연진이 갑자기 묻는다.
“이유는 많지요. 유진우 서재은 차용녀 모두 잡아들이지 않았습니까. 그걸 조부장님에 대한 도전으로 보지 않습니까?”
“하하하 아니 그거야 보위부장이면 당연히 해야 할 일 아닙니까?”
김원흥은 피식 웃었다.
“솔직히 말씀해 주십시오. 에돌지 마시고.”
“오해마세요. 에돈 것 없습니다.”
“그럼 현송원은 왜 갑자기 등장시켰습니까? 그건 내 계획을 모두 알고 시작한 거 아닙니까?”
“김부장의 계획이 대체 뭔데요. 오해마세요. 때가 되니까 내보낸 것뿐이요. 너무 오래 숨어 있었거든. 그때쯤이면 국가원수의 울화가 풀림 즉도 했고, 예견처럼 풀렸잖소. 젊은 것들은 다 그렇지. 욱 했다가도 이내 헤헤 하고 난 이미 현송원을 살려준 것이 우리가 아닌 보위부장이라는 말을 원수에게 했소.”
“고맙습니다.”
김원흥은 얼결에 대답했다.
“어떻소, 지내보니,,,”
“뭘 말입니까?”
“우리와 손잡고 한 번 일해 볼 생각 말이요. 당신은 유능한 사람이잖소”
“그러고는 싶은데 왜 이런지 모르겠습니다.”
“뭐가 말이요”
“내 마음이 허락 안 한단 말입니다. 자꾸 오야지 밭으로만 줄달음치니 말입니다.”
“오야지 밭이라니? 아, 거기에 아마 맛있는 오얏 열매가 잔뜩 무르익었던가 보군”
“그러게 말입니다. 달콤한 열매를 누가 마다하겠습니까,”
“허허허 근데 열매라는 건 말이요, 지각 있는 사람은 절대 제 손으로 따지 않는 법이요. 어찌 알겠소. 독이 묻어 있을지 감식반이라는 게 괜히 있는 줄 아시오? 자 한 잔 합시다.”
잔을 찧고 나서 두 사람은 일어섰다. 김원흥의 얼굴에 안쓰러운 빛이 흐른다.
“한 번 깊이 생각해 보시오. 난 부장동무가 현명한 사람인 줄로만 기억하겠소.”
밖에 나왔을 때 조연진을 태우고 온 기사가 차를 갖다 댄다.
김원흥은 맞은 켠 건물을 바라보았다. 어디든 숨어 기회를 노릴 유진우가 빨리 일을 치길 바랐다.
조연진만 죽으면 새로운 공세로 정계를 뒤집을 수도 있다.
어리석게도 조연진이 김정은에게 현송원을 살려둔 것을 자신이 했다고 말했은 즉 이자만 없어지면 모든 것을 자기의 계획대로 내밀 수 있을 것 같다.
현재 조연진이 하고 있는 섭정을 자신이 못한다는 법은 없지 않는가.
이제 다시 김정은에게 어떤 미련이 있어 그러는 것은 아니다. 일을 무사히 치르기까지 잠간 그의 침묵이 필요할 뿐이었다.
조연진이 기사가 열어주는 뒷좌석의 문으로 다가서고 있다. 완전 노출된 큼직한 목표물이다.
땅, 총소리가 울리면 모든 것이 끝날 판이다.
김원흥은 가슴을 조였다, 이제나저제나 했지만 총소리는 끝내 울리지 않는다.
조연진의 차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여유작작하게 빠지자 그는 그만 눈동자가 뒤집혔다. 아랫다리의 맥이 풀려 당장 콘크리트 바닥에 물러앉을 것 같다.
화가 치밀어 절부럭 대며 주위를 한 번 휘둘러 보고나서 그는 신경질적으로 차문을 열고 시동을 걸었다. 시동이 걸림과 함께 쾅, 하고 운전석문을 닫는 순간 김원흥은 관자놀이에 예리한 타격이 옴을 어렴풋이 느꼈다.
유진우를 믿고 호위병도 없이 혼자 나온 것을 후회할 겨를도 없이 김원흥은 뒷좌석 바닥에 정신 잃고 엎어져 널려있는 미세먼지를 아주 달게 들이킬 수밖에 없었다.
시내를 벗어날 때 몇 군데 보위부검문소초가 있었지만 어느 놈이 감히 보위부장차를 세울까, 유진우는 아주 능숙하게 거수경례를 하는 대원들에게 맞 경례까지 붙이며 유유히 수도경내를 벗어났다. 두 시간 정도 지나 차는 어느 무인지경에서 멈춰 섰다.
앞에는 검푸른 강물이 흘러간다. 유진우는 뒷문을 열고 김원흥을 끌어냈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축 늘어진 육신을 잠간 바라보던 유진우는 청소용 물통에 강물을 길어다 김원흥의 얼굴에 쫙 끼얹었다. 그의 몸이 꿈틀거렸다.
잠시 후 눈을 뜬 김원흥은 게슴츠레한 눈길로 유진우를 올려다보았다.
유진우의 손에는 조연진을 살해하라고 전달한 권총이 들려 있다. 그제야 상황파악을 한 듯 그는 픽 웃었다.
“이자보니 조연진의 졸개였군.”
“난 의리를 지켰을 뿐이야.”
“무슨 의리, 의리로 말하면 내게도 해당되는 거 아닌가? 처음에 넌 내가 살려줬잖아.”
“이용하기 위해서였지 설마 그쯤 한 것도 모르고 덤빈 바보로 생각한 건 아니겠지? 넌 나를 잘 몰라 넌 감방에서 큰 선심이나 쓰는 것처럼 내게 어쩌고저쩌고 했지만 눈은 잘 건사하지 못했어. 난 너의 그 가로 째진 눈이 매우 싫거든. 뭐 임산부를 살리고 난 죽으라구? 새끼 일어서라 난 너 같은 놈한테 당한 모욕을 그냥 넘기지는 못해, 화풀이를 좀 해야겠어. 일어나”
유진우는 손에 들었던 권총을 강물 속에 집어던졌다.
“좋아 한 번 해보지”
김원흥도 일어나며 몸을 어루만졌다. 지닌 총은 벌써 꺼내 없앤 것 같다.
운전실 다시방 속에도 총이 있었지만 유진우가 버티고 섰기에 그걸 사용하기는 글렀다.
윗도리를 벗어 내쳤다. 그도 군 출신이다. 강건 군관학교 격술 반을 나왔고 이후 저격부대 교관 경력과 이후 보위부특설부대 교관까지 지낸 경력도 있다.
다만 나이가 좀 많은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하나 아직은 자신이 있다. 유진우의 실력도 한 번 까보고 싶기도 하고.
하지만 그건 마음뿐이라는 걸 유진우의 첫 타격을 받아보고서야 실감된다. 그는 졌다고 손을 휘휘 내저었다. 유진우는 분명 분별력을 잃은 사람 같았다. 김원흥의 몸 여기저기에 무차별 타격이 우박처럼 쏟아졌다. 묘하게 급소는 피해갔지만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김원흥은 애처로운 비명까지 지른다. 광란하듯 구타를 강행하던 유진우는 강물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다시 다가 온 유진우는 김원흥의 핸드폰을 열고 그의 입에 가져다댔다.
“서재은을 풀어주라고 해. 어서”
“안한다면?”
“죽여 버릴 거다. 죽여서 갈기갈기 찢어 저 강물에 처넣을 거다. 물고기가 네 간을 씹고 쓸개도 밸도 죄다 씹어 버리게, 개새끼 빨리 짖지 못해?”
유진우는 다시 무차별 폭행을 강행한다.
“그 여자가 네게 대체 뭔데 이 지랄이야,,,”
김원흥은 절망의 비명을 질렀다. 평생을 거쳐 남에게 이렇게 구타당해 보기는 처음이다.
“난 그 여자를 존경해. 이 개새끼야, 여자의 몸으로 단 한 번도 허릴 굽히지 않고 뜻대로 살아왔잖아 거기에 비하면 너나 나나 다 개야, 주인의 비위나 맞추고, 이게 뭐야 나이 사십이 되도록 가질 것도 못가지면서 사냥개처럼 따라 다녔지만 궁극엔 이게 뭐냔 말이다. 전화 못하겠으면 하지마라. 대신 죽여줄게”
다시 구타가 이어졌다. 유진우는 이미 정신 줄을 놓은 것 같다. 아니 김원흥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 지금 매를 댄다고 해도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만, 그만해라 이 개새끼야 같은 개라면서 개가 개를 치냐 이, 이 할께 전화할게 으흐흐”
숨넘어가는 비명소리가 어두운 대기를 찢는다.
“개도 변신이 있어 이 더러운 놈아 난 용녀를 알면서 더 이상 개가 아니야. 이놈아, 사람이 어찌 살아야 사람인지 알게 됐단 말이다. 그런데 뭐? 임신을 비웃고 대신 죽으라고? 죽되 딴 놈을 죽이고 죽으라고, 그렇게 한 다음에 내 고기를 씹어 먹겠다는 거였어?”
유진우가 다시 일어서려는 순간 김원흥이 마지막 힘을 내어 덮쳐들며 손에 든 핸드폰을 낚아챈다.
“한다 해, 한다구, 전화하면 될 거 아니야”
폰을 열고 번호를 누르고 하는 그의 손이 마치 학질을 만난 듯 부들부들 떨렸다. 그의 면상을 발로 차려던 유진우는 잠시 그 모양을 지켜보고 서 있었다.
전화가 연결되자 김원흥은 들으라는 듯 “그래 나야 지금 즉시 서재은을 풀어 줘 어서”
하고 소리쳤다. 상대의 대답까지 듣고서야 김원흥은 털썩 손에 든 전화기를 떨어뜨렸다. 그리고는 끄윽, 목대 부러지는 소리를 내며 긴 팔을 늘어뜨렸다.
무지막지한 폭행에 그때까지 지탱하던 실오리 같은 힘이 모두 탈진해 버린 것 같다.
노련한 연기처럼 보이는 면도 없지 않지만 과도한 증오로 폭행을 거듭하던 유진우로서는 미처 그걸 감지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유진우는 뜨고 있는 그의 눈을 감겨 주고는 별빛이 총총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은하수가 비낀 공중에서 문득 용녀가 나타나 두 남매와 함께 어서 오라, 손을 흔들고 있었다. 유진우에게는 두 남매가 이제 용녀가 낳을 아들로 보였다.
지금 용녀는 용천역 부근에서 자기를 애타게 기다릴 것이었다. 시간이 없었다.
그는 비칠거리며 세워 놓은 승용차로 걸어갔다. 바로 그때다. 시동을 거는 순간 조수석문이 벌컥 열리며 피투성이가 된 김원흥이 질질 몸을 끌며 올라선다. 유진우가 입을 쩍 벌린다. 다시방 속에 넣어두었던 총을 꺼내 든 김원흥은 그에게 총구를 들이댄다.
밤빛에 본 그의 눈은 야수처럼 번뜩였다.
유진우는 적수공권이었지만 금방 불을 뿜을 김원흥의 내댄 총구를 향해 벼락 같이 몸을 날렸다.
탕, 총소리가 울렸다. 거의 동시에 유진우의 억센 주먹이 김원흥의 면상을 쳐 갈겼다.
미동도 없는 시신 같은 김원흥의 몸뚱이에 대고 그의 손에서 앗아낸 총으로 연속 총알을 박는 진우의 얼굴은 온통 환멸로 이지러졌다.
그가 간신히 차를 몰고 용천역 부근으로 왔을 때는 이미 몸에 지닌 힘이 모두 빠져 나간 뒤였다. 가슴에서 샘솟듯 흐르던 피도 이젠 원천이 없는 듯 뜸해졌다.
용녀는 애들을 대합실에 둔 채 밖에 나와 사방을 살피다가 갈지자로 비틀거리며 들어서는 승용차를 보고 행여나 하여 정신없이 뛰어왔다.
언덕 길 밑에 차문을 열고 나온 유진우가 쓰러져 있는 것을 본 용녀는 비명을 지르며 새처럼 달려들었다.
유진우가 간신히 눈을 뜬다. 그는 최후의 힘을 모아 윗주머니에서 작은 메모지 한 장을 꺼내 용녀에게 내밀었다.
“신의주에 가면 내 외할머니가 있소. 찾아가면 중국으로 안내해 줄 거요. 이게 주소요. 난 이제 틀렸어.”
“이렇게 가면 내가 살아 뭐한다우, 같이 살아야지 안그러우? 으흐흐흐”
무슨 힘이 있었던지 진우의 손이 용녀의 눈물 흐르는 얼굴을 쓸어 만졌다. 그러며 띠염띠염 겨우 말을 잇는다.
“에구,,, 좀 젊어서 올 거지. 처음엔 시원찮았거든 히히 요 웃음소리에 내가 그만 당신에게 빠져버렸어.”
“또 웃어 줄까유? 히, 히히 히히히 됐소? 제발, 제발 죽지 마우 응?”
“몸조심해요 여기 내 아들이 있잖소. 낳거들랑 남진이라 이름 짓소. 진짜남자라는 뜻이지. 진우, 허허 난 이름처럼 진짜 소 같은 남자였어. 머, 머저리였지. 바른 세상에 가서 잘 키워 주, 나처럼만 아니면 되거든. 그래도 당신만한 여자 내 내일생엔 어없었어. 고고,마,,,워”
유진우의 손이 툭 떨어졌다. 가슴 찢는 여자의 통곡소리가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오래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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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12-15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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