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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사회
탈북문학

'포 플라워' 제 24화

이지명 작가

글 | 신준식    필자의 다른 기사 보기

포 플라워 (four flower)
-작가 소개-
 
이지명
 
전 북한작가
청진1사범대학 어문학부 통신대학 1985년 졸업.
작가동맹 현직 작가로 있다가 2003년 탈북 2004년 대한민국 입국
한국소설가협회회원,
 
Intro
북한망명작가 이지명의 장편소설 <포 플라워, four flower>.
2014년 11월 10일부터 뉴포커스에서 연재를 시작합니다.
연재에 앞서 이 작품에 대한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이 소설은 김정은의 첫 사랑이었던 주인공 서재은의 복수를 통해 북한정권 내 실세들의 권력암투의 추악함과 독재정치의 비정함을 그려낸 소설입니다. 소설은 북한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들과 실존 인물들에 기초해 이야기를 펼쳐갑니다. 단 김정일과 김정은을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은 실명에서 조금씩 변형된 이름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제가 이 소설을 쓰기로 마음을 먹은 이유가 있습니다.
자유롭게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나갈 수 없는 불합리한 체제 속에서 사상과 노선에 목숨을 걸어야만 하는 인간의 운명은 도대체 얼마나 비참해질 수 있는지를 그려 보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소설 속 여주인공 서재은은 북한에서 살아가야 하는 가장 평범한 존재를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그녀는 한때 열렬히 사랑했던 자신의 첫 남자 김정은을 죽이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칩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녀가 복수를 이루어 내는 모든 과정을 저는 이 소설에서 그려가려고 합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통해 북한의 현 정권 실세들이야말로 수천만 인민들의 몸과 영혼에 서식하는 기생충과도 같은 무리임을 증명해 보이고 싶습니다. 불과 수십 킬로도 떨어져 있지 않은 저 휴전선 너머에서 벌어지는 참상과, 소위 ‘최고 존엄’이라 일컬어지는 존재의 실체와, 그 기이한 실체를 떠받치고 있는 이상한 집단의 진면목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북한으로부터의 망명 작가들만이 알 수 있고, 전할 수 있는 이런 이야기를 통해, 이곳의 독자들이 ‘인간’을, ‘인간의 삶’을. 그리고 ‘인간의 삶의 가치’를 다시 한 번 사유하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피를 찍어 쓰는 심정으로 연재를 시작하는 장편소설 <포 플라워, four flower>에 독자 분들의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14년 10월 20일 부악문원에서 이지명
 
목차
1>상처의 반란
2>참정의 눈
3>대장 집 안방
4>무도의 총소리
5>허탈
6>마지막 진술
7>딸을 찾는 아비
8>충신의 내면
9>음모의 합작
10>서재은의 계략
11>군중반향
12>현송원의 마지막 인사
13>3인방의 힘
14>다섯 번째 핀 사화
15>안개의 유혹
16>아방궁의 총성
17>겉과 속
18>여자의 향기
19>3인방의 정체
20>응당한 피해자와 억울한 피해자
21>하늘에 던져진 발자취
22>두 여자
23>김원흥의 역습
24>시련의 언덕
25>반전의 여인
26>개들의 개싸움
27>사화 여섯 번째로 피다
 
<24> 시련의 언덕
 
용녀는 지금의 이 상황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아침에 시장에 나왔다가 뜻밖의 봉변을 당했다. 신원을 알 수 없는 남자들에게 잡혀 끌려올 때까지만 해도 지금의 이런 상황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차에서 내려 어느 숲속 건물로 끌려 온 용녀는 2층의 한 방을 지나며 눈을 비볐다.
철창을 댄 작은 소창으로 복도를 내다보는 익은 눈길과 마주친 순간이다.
“영호야 네가 어떻게?”
영호는 용녀의 아들이다.
와락 달려들어 철창에 매달렸다. 방안엔 대학생인 딸 영희도 잡혀와 있었다.
우악스런 손길에 끌려 예심 실에 들어설 때까지 용녀는 웅, 웅 하는 머릿속 울림에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비로소 신상에 큰일이 닥쳤다는 현실감이 온다.
예심원은 매우 거칠게 생긴 남자였다. 아직도 닥친 현실이 믿어지지 않아 당황해 하는 용녀를 아니꼽게 바라본다.
“거기 앉아”
“예”
“너 왜 잡혀왔는지 알지?”
용녀는 얼결에 머리를 가로 저었다.
“그래 아직은 벙벙할 거다.”
남자가 움쭉 몸을 움직여 주전자의 물을 컵에 따라 용녀 쪽에 내민다.
“물 마셔. 속 좀 진정하고,,, 우리 화기애애하게 말해 봅시다잉”
생긴 것과 달리 예심 원이 아주 사근사근하다. 용녀는 단숨에 물 한 컵을 마셔버렸다. 그래도 속이 진정되지 않는다.
“저기요. 우리 애들은 왜 잡아왔어요?”
예심원이 히죽 웃는다.
“우선은 네가 왜 잡혔는지 먼저 생각해. 단마디로 묻겠다. 유진우가 어디 있어?”
“예?”
“유진우 말이다. 네 기둥서방”
“모릅니다.”
“몰라? 너 정말 맛 좀 볼래?”
“그 사람이 저하고 무슨 상관이라고 그래요?”
“상관없다,,, 그럼 한 번 볼까?”
남자가 노트북에 몇 번 손을 대고는 용녀 쪽으로 돌려놓는다.
그 날 집에 찾아 온 진우와 몸을 섞는 장면이 적나라하게 나온다. 마치 영화화면 같다. 용녀는 그만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런 줄도 모르고 내 집이여서 둘만 있어 뭐든 구애되는 게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런데 지금 보니 그건 내 집이 아닌 완전 길거리공개장소다.
이따금 혼자 적적할 땐 과부설음에 거추장스러운 옷 다 벗어버리고 자위행위도 서슴지 않고 했었는데 그럼 그것도? 세상에 이런 개망신이 어데 있단 말인고? 저게, 저게 글쎄 퍼런 대낮에 길거리에 나앉아 흉한 사타구니를 다 드러내놓고 이놈저놈 다 보라고 광고한 거와 대체 뭐가 다르단 말인가,
용녀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확, 확 끼얹어지는 모멸감에 내쉬고 들여 마시는 숨마저 막혀 달아오르던 얼굴이 차츰 백지장 같이 변한다.
경멸의 미소를 짓고 넘보던 예심원의 눈이 화등잔처럼 커졌을 때에는 이미 용녀가 정신을 잃고 바닥에 쓰러진 후였다.
그녀의 실팍한 어깨를 잡아 일으켜 세우려던 예심원은 히죽 웃으며 손을 거둔다.
다시 앉았던 자리로 돌아와 주전자의 물을 컵에 한가득 담아 그녀의 얼굴에 확 끼얹었다. 용녀의 눈이 번쩍 떠졌다. 예심원이 제 자리로 돌아가며 이죽거렸다.
“원수 댁에서 일했던 덕에 받았던 집인데 그게 뭐 제가 돈 주고 산 안방인가 했던 모양이지? 어리석기란 야, 궁상떨지 말고 어서 일어나 유진우가 어디 있는지만 말해 그가 잡히면 넌 즉시 내보내 줄 거다. 알았어?”
용녀는 그 말을 꿈속에서 들려오는 몽상의 소리처럼 들었다. 무슨 말인지도 가릴 수 없다.
단 하나 이제 자기는 세상에 얼굴을 들고 나다닐 수 없는 추한 짐승이란 생각밖에 없었다. 정말 부끄럽다. 아니 수치스럽다.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수백 개의 바늘이 온 얼굴을 찌르는 환각에 치를 떨며 용녀는 간신히 일어나 자리에 앉았다.
마주보는 예심원의 눈이 발가벗은 자기 몸 구석구석까지 흥미를 가지고 들여다보는 것 같아 홧홧 얼굴이 달아오른다.
“계속 침묵할거야?”
“지금 무얼 말하라는 겁니까?”
“이런, 이런 방금 말했잖아, 유진우의 거처를 대라고, 넌 알고 있잖아 설마 모른다고 하지 않겠지?”
“실은 몰라요”
“뭐?”
예심원의 눈이 이윽히 직시해 온다. 울컥 하는 것 같았지만 지그시 참는 것이 눈에 띌 정도로 알린다.
“야, 좋게 말할 때 불어, 더 큰 욕보기 전에, 너 유진우가 잡혀 있을 때 면회까지 갔었잖아 그때 뭔가 그에게 연락한 걸 우린 다 알고 있어. 잡아 떼 봐야 아무소용 없어. 우린 그를 잡아다 뭐 어찌하겠다는 것도 아니야 진상을 알아보려는 것뿐이지. 내가 더 긴말을 하기 전에 어서 말해 여긴 안 말하고는 배겨낼 수 없는 곳이야. 알아들었어?”
“글쎄 모르는 거야 어찌 말합니까? 면회는 사모님이 한 번 가보라고 해서 갔던 것뿐이고 이후엔 어떻게 됐는지 아무것도 모릅니다.”
“이 쌍, 안 되겠군 좋게 말해서 들을 년이 아니군.”
책상다리에 붙은 초인종을 누르자 대기한 듯 눈을 번뜩거리는 사내가 들어온다.
“시작해”
“알겠습니다.”
사내가 나간다. 조금 간격을 두고 예심원이 옆 벽을 바라보며 리모컨을 조종하자 벽을 가렸던 커텐이 스르륵 벗겨지고 검은 유리판이 나타났다.
옆방이 마치 같은 방인 것처럼 환히 들여다보이는데 거기엔 이제 열아홉 살인 용녀의 딸 영희가 책상 앞에 바들바들 떨며 서 있었다.
방금 들어왔던 사내가 영희에게 다가가 거칠게 윗옷고름을 풀어버린다. 영희가 입은 것은 대학생 교복인 조선치마저고리다.
영희가 가슴을 움켜쥐고 비명을 질렀지만 억대우 같은 사내는 마치 감각 없는 기계처럼 거쿨진 손을 뻗쳐 영희를 틀어잡고 마구 저고리를 벗겨낸다.
순식간에 저고리가 벗겨지고 안에 입은 스프링까지 찢어 버리자 분홍색 속옷만 댕그랗게 남았다. 언젠가 1백화점에 가서 용녀가 직접 사다준 브래지어다.
영희는 엄마를 닮아서인지 유달리 가슴이 컸다. 백화점에서도 제일 큰 C컵 정도는 충분하다. 깊숙이 패인 가슴골로 사내의 손이 쑥 들어가 마지막 남은 브래지어를 잡아채려는 순간 용녀는 말하겠소, 하고 소리치며 벽을 대신한 두터운 유리를 주먹으로 마구 두들겼다.
그만, 그만 그만해, 용녀는 너무 급해 바닥에 주저앉아 두 발을 버둥거렸다.
싸 버린 오줌이 질퍽하게 바닥을 적시며 천천히 흘러내린다.
“진작 그럴 것이지,”
리모컨을 누르자 옆방 정경은 커튼에 순간에 가려지고 예심원은 음울한 눈을 들어 용녀를 직시한다. 용녀의 두 볼로 줄기를 이룬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시련은 용녀의 독점만은 아니었다.
대동강 하류 쪽으로 흘러내려간 서재은은 깊은 밤중에 정신을 차렸다.
눈을 뜨자 엉성한 서까래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시커먼 거미가 둥그렇게 줄을 쳐 놓고 귀퉁이에 웅크리고 있다가 파리 한 마리가 걸려들자 스르륵 다가가 냉큼 입에 물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다. 왠지 그 꼴이 남의 일 같지 않아 괜히 불쾌했지만 재은은 몸을 일으켜 사위를 둘러보았다.
전형적인 농촌 집이다. 흙으로 부뚜막을 쌓고 커다란 솥을 두 개나 걸었다. 아궁이에선 탁, 탁 소리를 내며 나무가 타고 있었고 솥과 뚜껑사이에 끼운 베천으로 만든 보가 보였다. 시루를 놓고 무엇인가 쪄 내는 상 싶었다. 퀴퀴한 냄새에 섞여 씁쓰레한 쑥 향이 묻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솥에 안친 것이 쑥임을 대뜸 알아볼 수 있다.
그녀가 몸을 일으켜 덮은 낡은 담요를 들치는데 할머니 한 분이 문을 열고 들어선다.
“에구마, 정신 들었구마 자네 얼매나 잤는지 아우? 일어났으문 얼른 정신 채리우 뭘 좀 먹어야 기운도 날 텐데, 내 그래서 지금 밥하는 중이라우”
할매는 그리 수다를 떨며 부엌으로 내려간다. 솥뚜껑을 열어젖히자 안에 몽켰던 샛 김이 천정으로 줄달음친다.
“이젠 다 삶겼어, 철이 지나 쑥이 쇠어버려서 센 김을 쏘여야 먹을 수 있다니까, 상을 놓게”
할머니가 낡은 찬장에서 귀 떨어진 웅백에 쑥을 섞어 지은 밥을 푹푹 퍼 담는다.
재은은 얼른 구석에 세워 놓은 상을 집어 네다리를 펴 놓았다. 김 서린 방안에 앉으니 못 견디게 시장하다. 쪼르륵 배에서 소리가 났다. 자, 하며 할머니가 올려 보낸 웅백을 받아 상에 놓자 찬장에서 쉰 김치그릇을 꺼내 들고 할머니도 올라왔다.
“할머닌 혼자 사세요?”
“응 아들내외가 있지만 따로 산다네. 하도 먹을 게 없는 세월이라 어디 얹혀 살 체면이 있어야지, 참 글구 우리 아들이 풀밭에 엎어진 자넬 구했다우. 대체 어쩌다가 강물에 빠졌다우? 그래도 용케 헤어 나왔지비 우리 아들이 그러던데 무슨 훈련 받은 사람이 아니라면 절대 새 애기처럼 강물에서 살아나올 수 없다하던데, 훈련이 무스게요?”
“아니에요. 살자고 악을 쓰니까 기슭에 나오더라구요. 여울을 마침 만나서,,,”
“에구, 그게 여울이 아니우 그냥 얕은 곳이지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무데기 비 때 산사태가 나서 강물이 메워졌다우. 이번 비에 쓸려 내려갔는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색시는 천운을 타고 났소. 살아나왔으니끼니”
“할머닌 여기 태생이 아닌가 봐요.”
“그래 맞지비 저어기 햄경도에서 살았는데 아들 따라 여기 평안도루 왔지비 평양인접이라 좀 나을 줄 알았는데 여기두 살기 바쁜 건 매한개지우 자 거친 음식이라두 좀 들기오. 지금 세월엔 아무거나 입에 넣어야 산다이 어스래”
할머니가 숟가락까지 쥐어준다. 쑥이 대부분이고 한줌 옥수수가루를 뿌린 밥은 목구멍을 넘기기 어려웠다. 배는 고파도 욱, 역기가 치솟았다. 재은은 쑥 범벅을 억지로 넘겼다. 할머니의 정성을 봐서 못 먹겠다는 소리를 할 수 없었다. 한 숟갈 넘기자 목이 칼칼해지고 속이 메슥메슥해졌다. 육체가 음식에 적응되지 않고서는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음식 아닌 음식이었다. 다시 우물우물 술질하는데 할머니는 오물오물 참 맛있게도 드신다.
“잡숫기가 일없어요?”
얼결에 재은이가 물었다.
“왜? 맛없어 못 먹겠소? 에구 배 덜 고팠구마. 뉘 집 자손이우?”
할머니가 숟갈을 멈추며 재은을 빤히 쳐다본다. 뼈 밖에 없는 앙상한 얼굴이다.
굵은 핏줄이 얼기설기한 투박한 손, 검고 잠이 돋은 시커먼 피부, 재은의 눈에 눈물이 쿡 솟아올랐다. 왕궁에선 산해진미로 배를 두드리며 서로 상대를 죽이지 못해 살찐 머리를 쥐어짠다. 이 나라 백성들의 생활고가 이 정도로 추락해진 원인이 새롭게 안겨드는 시점이었다.
“죄송합니다. 속이 좀 안 좋아서, 음식이 안 넘어가요.”
“그럴 게요. 실은 이런 음식은 입으로 먹는 게 아니구 몸으로 먹는 거라우.”
“몸으로 먹다니요, 그게 무슨 소리예요?”
“먹어야 몸이 사니까, 죽는다구 생각하면 무어를 못 먹겠소. 에구 좀 눕소. 가만 있자 배 아플 때 먹는 약이 어디 있겠는데,,,”
할머니가 돌아앉아 찬장 서랍을 뒤졌다. 신문지에 싼 조그만 것을 찾아낸 할머니가 안색을 펴며 다시 돌아앉는다.
“이거 먹소. 배 아픈 덴 만병통치약이요. 제꺽 멎을 게요”
“그게 뭔데요?”
“아편이요. 귀한 거지만 돈 주고 구입한 건 아니우, 수확 철에 밭에서 긁어 온 게지비”
손톱눈만큼 떼어낸 검은 진을 숟가락에 담아 내민다. 안 먹을 수도 없어 재은은 얼른 받아들었다. 할머니가 고뿌에 물을 떠오자 숟가락을 입에 넣고 빨았다.
그 다음 물로 입가심을 했다. 온 몸이 지끈거려 그거라도 먹어야 하겠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권하는 대로 자리에 누워 10분 쯤 지나자 거짓말처럼 몸이 거뜬해진다. 머리도 맑아졌다.
할머니 말처럼 만병통치약이 분명했다. 밖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조금 먼 짖음 소리 같았지만 재은은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났다.
“왜 그러우, 자지 않구, 배고파 잠이 안 오우?”
“할머니 불을 꺼요”
밤이 깊어 밝아진 전등불을 보며 재은이가 급히 이른다.
“아니 왜? 잘라구? 가만 내 자리도 좀 보구”
월, 월, 하는 소리가 다시 들린다. 분명했다. 그건 분명 군견이 짖는 소리였다.
재은은 잠시 밖을 주시하다가 이내 일어나 문을 열었다. 벌써 군견을 앞세운 군인들이 눈에 잡힐 거리까지 접근했다. 거칠 것이 없는 추격 같았다.
잠시 주위를 둘러보던 재은의 눈이 빗물이 담겨 있는 커다란 독에 멎었다.
무얼 재고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촉각을 다투는 긴장한 순간, 재은은 재빠르게 뛰어 독 속으로 몸을 감춘다.
비교적 큰 독이어서 그녀의 몸을 감춰주는 데는 무리가 없었다. 반나마 차 있던 빗물이 그녀가 들어앉는 바람에 독목까지 가득 찼다. 강에서 입에 물고 간신히 숨을 지탱했던 비닐 관을 버리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재은이 독 속에 몸을 감춘 것과 거의 때를 같이하여 군견을 앞세운 군인여럿이 우르르 마당으로 쓸어들었다.
뜻밖에도 선두에는 강기슭에 쓰러졌던 재은이를 할머니 집에까지 안아왔던 아들이라는 사람이 섰다. 밖의 소란에 할머니가 내복 바람에 문을 열고 나오는데 군인 하나가 와락 밀어버리고 구둣발로 문턱을 짓밟으며 집안으로 들어간다. 따라선 군견이 집안에 대고 으르렁거렸다.
“어이쿠”
할머니가 마당에 꺼꾸러지자 급히 아들이란 사람이 달려와 부축해 일으켜 세운다.
“이게 무슨 짓이야? 기껏 알려줬더니 내 어마일 잡아?”
“어디 있어?”
집안을 들여다보고 난 군인이 아들에게 묻는다.
“어머이, 그 여자 어디 갔어요.”
“에그”
부축을 받아 일어서던 할머니가 다시 꼬꾸라진다. 군인에게 밀쳐 넘어지며 허리라도 다친 것 같다.
“벌써 나간지가 언젠데,,, 네가 저 군대를 데려온 게냐?”
“그래요, 그 여자가 반역자라고 합니다.”
“반역자라니, 그 새 애기가?”
“예. 어서 일어나 봐요”
할머니가 일어나다 말고 다시 주춤한다.
“아무래도 무스게 잘못된 것 같구마. 어이구 그리구 이보시오들, 물에서 나온 그 새 애긴 아까 집을 나갔수. 찾아보겠으면 다른데 가서 찾아봅서,”
수색책임자인 듯한 자가 한 발 다가오며 할머니에게 말한다.
“혹 숨겨 놓은 건 아니오? 우린 국가안전보위부에서 나왔소. 그 여자를 두둔했다간 어떤 대접이 차례지는 것쯤은 알고 있을 텐데. 벌써 마을 요소요소에 우리 대원들이 쫘악
깔렸소. 여자는 정확히 언제 나갔소?”
“가이가 짖는 소리가 나자 나갔는데 그 다음은 내사 모르지. 헌데 그런 고운 각시가 반역자라니, 그게 무슨 소리우? 얘 어서 날 좀 일으켜다우. 자빠져 있어두 방에 들어가 자빠져야겠다.”
아들은 어머니를 부축해 집안에 들인다.
그 사이 책임자는 주변을 예리하게 살폈다. 어디 멀리 간 것 같지 않다는 표정이 그자의 얼굴에 역력하다. 군견은 집 오래를 돌면서도 안에만 대고 월, 월 짖는다. 집 마당을 살펴보던 책임자의 눈길이 마당구석에 놓인 큼직한 독에 멈춘다.
“야”
그는 어디라 없이 꽥 소리쳤다. 집안을 수색하던 자도 오래를 돌던 자도 모두 그 소리에 “옛”하며 그에게로 뛰어온다. 그는 독을 눈짓했다. 해도 선뜻 다가서는 자가 없었다. 여자가 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자들이다. 어머니를 집안에 들여 뉘운 아들이 그때 밖에 나오고 있었다. 책임자는 아들에게 대고 독을 가리켰다.
“저건 무슨 독이야?”
“그건 겨울 김장독이요. 근데 왜요?”
아들은 성큼성큼 독이 놓인 곳으로 걸어간다. 물이 가득한 것을 보고나서 이내 돌아선다.
“비가 와서 물이 가득 찼소. 못 믿겠으면 와 보오.”
“비켜, 총에 맞지 않겠으면,”
책임자는 총을 꼬나들었다. 독을 겨냥해 방아쇠를 당기는 찰나 아들이 달려들며 와락 밀친다.
“하나밖에 없는 김장독을 깨려고? 안 돼”
하지만 이미 방아쇠는 당겼다. “탕,” 하는 야무진 총소리가 밤공기를 짼다.
밀치는 바람에 조금 빗선 총알은 독 귀퉁이를 맞히며 작렬한다. 깨진 독에서 좌르르 물이 쏟아졌다. 독이 놓인 뒤에는 널판자로 낮은 울바자를 쳐 놓았는데 독이 깨진 순간 서재은은 토끼처럼 홱 몸을 솟구쳐 울바자를 뛰어넘었다.
“잡아라.”
사람보다는 군견이 더 빨랐다. 워웡, 하고 짖으며 어느새 울바자를 넘은 군견이 재은의 아래 바지를 물고 늘어진다. 다른 한 마리의 군견은 여자의 팔소매를 물고 늘어졌다.
이어 달려든 다섯 명의 군인들에 의해 서재은은 어쩔 수없이 수갑을 차고야 말았다.
그녀 몸을 꼼꼼히 수색했지만 어디에도 총은 없었다.
책임자는 승기가 살아 휴대폰으로 여자를 잡았다는 보고를 한다. 서재은의 얼굴이 심하게 이지러지며 원망스런 눈길로 아들을 쏘아보다가 이내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한 밤하늘을 쳐다보았다. 열린 방문 안에 앉아 끌려가는 서재은을 바라보는 할머니의 입에서도 깊은 한숨이 쏟아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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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12-18 0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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