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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사회
탈북문학

'포 플라워' 제 19화

이지명 작가

글 | 신준식    필자의 다른 기사 보기

포 플라워 (four flower)
-작가 소개-
 
이지명
 
전 북한작가
청진1사범대학 어문학부 통신대학 1985년 졸업.
작가동맹 현직 작가로 있다가 2003년 탈북 2004년 대한민국 입국
한국소설가협회회원,
 
Intro
북한망명작가 이지명의 장편소설 <포 플라워, four flower>.
2014년 11월 10일부터 뉴포커스에서 연재를 시작합니다.
연재에 앞서 이 작품에 대한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이 소설은 김정은의 첫 사랑이었던 주인공 서재은의 복수를 통해 북한정권 내 실세들의 권력암투의 추악함과 독재정치의 비정함을 그려낸 소설입니다. 소설은 북한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들과 실존 인물들에 기초해 이야기를 펼쳐갑니다. 단 김정일과 김정은을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은 실명에서 조금씩 변형된 이름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제가 이 소설을 쓰기로 마음을 먹은 이유가 있습니다.
자유롭게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나갈 수 없는 불합리한 체제 속에서 사상과 노선에 목숨을 걸어야만 하는 인간의 운명은 도대체 얼마나 비참해질 수 있는지를 그려 보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소설 속 여주인공 서재은은 북한에서 살아가야 하는 가장 평범한 존재를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그녀는 한때 열렬히 사랑했던 자신의 첫 남자 김정은을 죽이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칩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녀가 복수를 이루어 내는 모든 과정을 저는 이 소설에서 그려가려고 합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통해 북한의 현 정권 실세들이야말로 수천만 인민들의 몸과 영혼에 서식하는 기생충과도 같은 무리임을 증명해 보이고 싶습니다. 불과 수십 킬로도 떨어져 있지 않은 저 휴전선 너머에서 벌어지는 참상과, 소위 ‘최고 존엄’이라 일컬어지는 존재의 실체와, 그 기이한 실체를 떠받치고 있는 이상한 집단의 진면목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북한으로부터의 망명 작가들만이 알 수 있고, 전할 수 있는 이런 이야기를 통해, 이곳의 독자들이 ‘인간’을, ‘인간의 삶’을. 그리고 ‘인간의 삶의 가치’를 다시 한 번 사유하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피를 찍어 쓰는 심정으로 연재를 시작하는 장편소설 <포 플라워, four flower>에 독자 분들의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14년 10월 20일 부악문원에서 이지명
 
목차
1>상처의 반란
2>참정의 눈
3>대장 집 안방
4>무도의 총소리
5>허탈
6>마지막 진술
7>딸을 찾는 아비
8>충신의 내면
9>음모의 합작
10>서재은의 계략
11>군중반향
12>현송원의 마지막 인사
13>3인방의 힘
14>다섯 번째 핀 사화
15>안개의 유혹
16>아방궁의 총성
17>겉과 속
18>여자의 향기
19>3인방의 정체
20>응당한 피해자와 억울한 피해자
21>하늘에 던져진 발자취
22>두 여자
23>김원흥의 역습
24>시련의 언덕
25>반전의 여인
26>개들의 개싸움
27>사화 여섯 번째로 피다
 
<19>3인방의 정체
 
남을 속이자면 내가 속아야 하고 내가 속아야만 너도 속을 것이다. 정치판 인생살이가 다 그런 것 아니던가? 이러저러 정해 놓은 규칙은 멀쩡하다마는 그런 것에 구애되어 이 판에 해야 할 일을 던져 버리면 그게 사람이야? 무슨 충신이요, 떡 신이요 해도 발가벗겨 놓으면 다 거기서 거긴걸 무얼 탓할 게 있고 무얼 따질 것 있느냐 하는 거다.
갑자기 총 정치국장 자리에서 물러날 위기에 처하고 보니 요즘 최용회는 울화가 번져 제풀에 고인 물에 콱 코를 박고 싶었다. 거푸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거실 소파에 앉아 멀거니 후일을 점쳐 보노라면 참 암담하기 짝이 없다.
정말 순수한 충심으로 김정은을 보호하기 위해 무언가를 아작 냈는데 돌아 온 대접이 이러하다보니 울화가 치밀어 씹는 밥이 모래 알 같고 걷는 길이 시궁창 같다.
지금도 귓전에 뱅뱅 돈다. 장승택을 잡기 위해 보여준 사진을 장승택이 죽자 이번엔 김정은이 그에게 다시 보여주며 을러멨다.
오늘 최용회는 원심관에 찾아 가 김정은을 만났다가 아예 혼쭐이 났다. 만나는 순간 던지는 말투부터 달랐다.
“총 정치국장, 넌 내게서 가장 약한 곳을 노려 고모불 죽이는 문서에 싸인하게 만들었지?”
“원수님. 그 자는 반역자입니다. 이젠 죽은 사람이고요. 언젠가 원수님께서도 그 자를 아주 나쁜 놈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맞아 그랬어, 나쁜 놈이기는 했지만 내가 죽인다고는 말 안 했어. 왜? 너 2인자 자리에 올라앉고 싶은 거야?”
“원수님 왜 또 이러십니까. 아무렴 조카며느리인 국모를 여자로 보고 서슴없이 안아버리는 놈을 어찌, 그런 패륜아는 백 번 죽어 마땅합니다.”
“패륜아? 다른 사람이면 몰라라 너는 그런 말 할 자격 없을 터인데,”
“예?”
“젊은 여자애들 갖고 놀고, 놀다 못해 외국까지 데리고 나가 이빨 다 뽑고 거 뭐라더라, 오뉴월 아니 오럴섹스파티까지 벌인 개새끼가 무어 어쩌고 어째? 패륜아? 그런 말이 주둥이로 나가?”
“아니 그건?”
“왜, 내 말 틀렸어? 설희 말에 의하면 그날 고모부 집에 가서 인사를 하고 나오려는데 잠간 안아보자고 해서 그러라 했다는 거야. 고모가 늘 밸밸 앓아 병원 침대에서 살다시피 하니 너무 고독해서 처조카 며늘아이 한 번 안아 본 것 같고 그걸로 날 자극하다니, 쌍. 돼 먹지 못한 놈, 너 그러고도 총국장이야?”
“그런 게 아닙니다. 원수님”
“무슨 말 대답질이야, 내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 계속 말대답 질 할래?”
“네, 네 그렇습니다.”
“너 안 되겠어. 맛 좀 봐야 돼, 새끼 말이야 나이 육십 너머 처먹고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왜 설희까지 잡아먹었으면 좋겠어?”
김정은이 어투가 하대로부터 완전 쌍말로까지 넘어가자 최용회는 그만 무릎을 꿇었다.
“절대 그건 아닙니다. 그만 노염 푸십시오.”
“됐어, 지금 당장 그 사진 찍은 놈 잡아 들여. 어서, 죽여야 할 놈은 바로 그놈들이야. 도대체 그게 누구야? 설마 네가 시킨 건 아니겠지,”
“?”
최용회는 말문이 막혔다. 이걸 어떻게 설명하나 이거다. 그래도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하지만 김정은이 그걸 믿을 리가 없다.
“그걸 지금 변명이라고 나한테 말하는 거야? 그럼 우편으로 왔다면 누가 보냈는지 그것부터 알아보는 게 순서가 아니었어?”
“맞습니다. 그 날 너무 흥분이 돼서”
“흥, 개소리 또 짖네, 월, 월 그따위 개소릴 난 안 믿어 네가 시킨 것이 아니라면 빨리 나가 잡아와”
“원수님 왜 이러십니까?”
최용회는 가슴을 쥐어뜯으며 뚝뚝 눈물을 흘린다.
“월, 월 참 개가 눈물을 흘리네, 네가 아무리 개처럼 눈물을 쥐어짜도 난 절대 안 속아. 내가 후회되는 게 있다면 집권 초에 널 믿고 이영후나 김영출, 김정국, 그담 또 누구더라 그래 우동춘이 좌우간 그 7인방을 네 말 듣고 내 주위에서 모두 사라지게 만든 거야. 다 거기서 거기지, 뭐가 특출해서. 나가 봐 꼴 보기 싫으니까, 나가서 총 정치국장 인계준비나 해. 그간 정을 봐서 죽여 버리진 않을 테니까, 옛날처럼 근로단체나 쥐고 조용히 살아, 그렇다고 또 미끈한 애들 골라놓고 오입질 할 궁리는 말고, 빨리 나가 봐. 내 맘 변하기 전에, 어서 월, 월, 월”
김정은은 나가는 최용회의 뒤에 대고 계속 개 짖는 소리를 낸다. 지금도 그 얼굴 뜨거운 망측한 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울화가 터지는 속에서도 조금은 이상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머리가 돌지 않고서야 어찌 그런 소리를 주저 없이 낸단 말인가, 돌아보면 자기가 너무했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이건 국가안전에 관한 문제다. 더 정확히 말하면 바로 김정은, 너의 안전문제고 체제의 존속문제다.
최용회는 잠시 후 생각을 바꾸었다.
아직 해임이 완결되지 않은 터여서 조금은 시간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 기간에 반드시 미지수를 해결해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었다.
좌천돼 내려간다고 해서 안심할 근거는 눈곱만큼도 없다. 그 자들은 화학 탄 뿐이 아닌 핵탄에도 반드시 손을 댔다고 그는 장담했다.
집에서 관사로 나온 최용회는 즉시 비상회의를 소집했다. 최측근 몇 명이 황급히 달려왔다. 그는 곧 분담을 했다.
내려가 조사해 볼 기관은 바로 핵연구소다. 문서를 뒤져 보면 핵 보유량도 정확하게 나올 것이고 재고량도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다음은 국가군사기밀실이다.
장승택이 평시 자주 가던 곳이었다. 거기에 핵관련 문서를 따로 보관하는 문서실이 있다고 들었다. 문서만 찾으면 보유저장소를 찾아내는 건 시간 문제였다.
찾아내는 즉시 검열단을 파견해 보유량을 살펴 볼 작정이었다. 하지만 최고 사령관인 김정은의 결재를 받지 못하고 진행하는 이상 모든 것을 은밀히 진행해야 했다.
그것도 불가능하면 무력으로 점거하고 수색할 수밖에 없었다.
자칫 잘못하면 목숨을 보존할 수 없는 위험천만한 일이지만 살기위해서라도 반드시 해야만 했다. 그러지 않으면 장승택을 죽인 후유증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생각에 모의가 끝나자 최용회는 즉시 행동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자리를 보존하기 위한 이러한 광기 때문에 그에게 어떤 치명적 결말이 차례질지, 그때까지 그는 감감 모르고 있었다.
 
대성산 산림경영소란 간판이 붙은 음침한 건물에 다시 3인방이 모였다.
하나씩 일이 벌어질 때마다 어김없이 모여 앉는 그들이다. 평시엔 상호간 그림자도 보여주지 않지만 이럴 땐 반가운 기분으로 모여앉아 술도 마시고 차도 마신다.
오늘은 바깥이 아닌 실내에 술상이 차려졌다.
마치 치외법권지대라도 된 듯 외부의 간섭이 완전 결여된 이곳은 그들 3인방의 왕국이고 안방이었다. 다섯 명의 여자들이 분주히 음식을 나른다.
그간 화염방사기로 처형당했다는 국제 뉴스를 거실에 놓인 한국위성TV로 접하고 나서야 자기들이 얼마나 무서운 올가미에서 벗어났는가를 가슴 서늘하게 느껴 본 여자들이다.
처음 이곳에 들어왔을 때 이곳 주인들을 만나봐서 알고는 있지만 재차 만나는 오늘의 감회 또한 기대되는지 음식을 나르면서도 자주 출입문을 살핀다.
벌써 건물에 들어와 옆방에서 지금 자기들을 화면으로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생각은 미처 못 하는 것 같다.
“어떤가? 새로운 소식은 있나?”
어둑어둑한 불빛 속에 선글라스를 낀 두 사람이 마주앉아 있다.
“네. 방금 말씀드렸지만 최용회, 그 자를 가만 두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왜?”
“냄새 잘 맡고 줄 잘 서는 데는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녀석인데 눈치는 영 개 코거든요.”
“무슨 말인가?”
“살점처럼 믿는 측근 중에도 우리와 손을 잡은 인물이 있다는 생각은 전혀 못해요. 아둔하기로는 완전 첫 번쨉니다.”
“그렇기는 해, 머저리지. 내력을 보고 써 주니 그렇지 안 써 주면 그자는 길가의 돌멩이야.”
“그러게요. 어찌 우리가 보낸 그 사진을 덥석 물고 그 달음으로 달려 가 일을 칠 수 있죠? 아참 대퇴골이 지끈지끈 해. 그걸 보고 동참한 젊은 혈기도 같고, 그리고 그만하면 형세가 어떻게 돌아가는 것도 알겠다만 지금 날뛰는 꼴을 좀 봐요.”
“측근들을 휘동해 핵탄을 찾겠다고 나선 것 말인가?”
“네”
“찾기는 어떻게 찾아, 어벌뚝지 큰 놈. 김정은이도 정확한 실체를 모르는데 제까짓 것이?
김 위원장이 죽으면서 실수한 건 바로 그거야, 아들에게 정권을 이양하면서 정확한 핵 저장소를 알려 못 줬으니까. 최용회 그놈 참. 전국 100여 곳에 가짜를 진짜처럼 위장해 숨겨 놓았는데 그걸 찾아보겠다고? 걔가 정신이 있는 건가, 나간건가”
“신경 쓰지 마세요. 모르니까 그러는 거잖습니까.”
“어처구니없어 그러지 공연한 수고를, 아니 죽음이지 이제 봐, 첫걸음부터 돌에 걸채일 거야, 깊어질수록 1호 고발이 빗발 칠 거구 그러다 보면 또 추접한 시체로 변하게 될 테지.”
“돌아보면 우리가 정말 멋지게 해냈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그건 뭘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인가?”
“핵무기지요. 누구의 손에 그 관리가 주어지는가에 따라 실권도 가지게 된다는 것을 최용회 그 자도 이제야 안 것 같습니다.”
“그래, 우리 3인방이 이 나라의 실지 권력자인 것도 바로 그 핵탄을 수중에 넣고 있기 때문이지. 그런데 그걸 모르는 바보들이 수두룩하니 오히려 일하기가 쉬워. 최용회 그 자도 지금 작전을 꾸미고 있을 뿐 감히 실행은 못할 거야”
“그러든 안 그러든 얻어 쥘 건 없으니까 살펴는 봅시다. 일을 쳐 봐야 결과를 아는 바보 같은 놈인데요. 뭐”
“그렇긴 해 언제 시작하나 지켜봐요.”
중간 문이 열렸다. 3인방 중 한 사람이 서재은이를 데리고 들어온다.
“오, 우리영웅이 오는군, 어서 오시게”
원탁을 가운데 놓고 세 사람이 마주앉는다. 그냥 서 있는 서재은을 향해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람이 손으로 옆 의자를 가리킨다.
“앉게”
서재은이 의자에 앉자 봉투를 꺼내 그 앞에 내민다.
“그간 수고한 대가요. 받아두게”
“고맙습니다.”
서재은의 무거운 입이 열린다. 아마도 그녀의 말을 들어보기는 세 사람 다 오랜만일 것이다.
“며칠 쉬면서 백화점에 내려가 필요한 것도 사고”
“네, 알겠습니다.”
서재은이 일어나 머리를 숙여 경의를 표한다. 마주 앉은 두 사람도 밝게 웃으며 가볍게 박수를 쳤다.
“그간 수고가 많았어. 지금 여기까지 온 건 다 자네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야. 갈마반도사건도 그렇고 이번 장승택 처형도 그렇고, 화학탄 수송도 그래, 정부 내에서도 우릴 가리켜 3인방이라 수군대지만 실존정체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이제 한 사람 남았네. 우리의 정체가 밝혀지기 전에 그 한 사람도 깔끔하게 처리해야겠네. 자네 역할이 커야 할 거야.”
“알고 있습니다.”
“이번 지중해 공해상에서 일어난 무기수출사건에 관한 세계반향은 어떤가?”
중동출장자가 눈길을 돌리며 물었다.
“이젠 잠잠합니다. 실체를 알았겠지요. 말씀 드리지 않았습니까?”
“정말인가?”
“네, 지금쯤엔 수사결과가 발표될 시점인데도 아니 지났죠. 마치 없던 일이 돼 버린 듯 조용합니다.”
“그렇겠지.”
중동출장자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며 큰 숨을 내쉰다. 창가에 다가간 그가 밖을 내다보며 말했다.
“사실 지중해 공해사건은 내가 연막으로 진행시킨 가짜 사건이었어, 자네들까지 속여 미안하네.”
“아니 동해 호를 출발시킨 건 바로 난데. 지금 무슨 말씀을?”
“그건 지중해연안이고 공해에 나타난 잠수함에서 뭔가 인양했다는 건 가짤세. 세계의 뉴스거리를 마련키 위해 일부러 벌인 일이었어. 그것뿐이 아니지. 황부용을 통해 무기고가 비게 만들고 최용회를 달아오르게 만듦으로써 한 번 이 어지러운 정국을 흔들어 본 거야. 결국 수확이 크잖아”
“잠수함은 진짜 없었습니까?”
“인양기를 갖다 댄 자들이 꾸민 것인데 자세한 건 나도 모르지, 돈 좀 쓰면 다 되는 일이야.”
“네에 그렇군요. 정말 수확은 대단했습니다.”
“그래, 최용회를 궁지에 몰아넣고 그의 막강한 버팀목이었던 장승택을 제거하는 쾌거를 이루어 냈지. 참 최용회, 그 자는 너무나 아둔한 멍텅구리야. 머리가 없어, 머리가,,,”
“생각해 보니 어처구니가 없군요. 기실 최용회보다 더한 바보는 따로 있지요. 그러고 보면 이젠 우리의 기반이 그런대로 안착이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그런 생각을 갖기엔 아직 일러, 괴변은 안심할 때 일어나는 법이니까, 자네가 한 번 개관해 주게.”
“알겠습니다.”
서재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실지 이 나라 정계실권자들이라 해도 과언의 아닌 세 사람을 주의 깊게 둘러보고 나서 그녀는 심중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제가 관여했던 일이어서 그동안 벌어졌던 일과 이제 해야 할 일, 그리고 현재 처한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하나로 묶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럴 때의 그녀모습은 천만군을 움직이는 노회한 영장 같았다. 세 사람 다 기대에 찬 눈길을 그녀에게 집중했다.
“나라를 움직이는 수뇌부라지만 철부지 어린애의 눈으로 살펴봐도 참으로 아이러니 하고 또 천박스럽고 유치합니다. 지금껏 김정은 측근들에 대한 과감한 제거 역시 아주 유치하고 천박한 방법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무기 수출에 관한 연막작전은 친중파로 승승장구하는 장승택을 제거하기 위한 주요 작전이었습니다. 만약 갈마기지사건이 없었다면 장승택의 영향력을 제지시키지 못했을 것이고 그를 움츠러들지 못하게 했을 것입니다.
물론 여기엔 정계2인자가 되어보려는 최용회의 야심이 결정적 역할을 했음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린 그것을 아주 적절히 이용했습니다.
그게 바로 지중해 연막사건이지요. 그와 아울러 이설희와 장승택간의 부적절한 관계폭로 또한 매우 성공적이었습니다.
그것으로 해 이제 최용회는 정계에서 축출될 것이고 그러고 보면 김정은은 완전 외톨이가 되어 당 조직부의 섭정과 지시에 무조건 복종하게 될 것입니다.
최용회경질은 이제 시간문제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 자를 완전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죽은 자라야만 부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최용회까지 제거해야 우리의 첫 번째 작전이 완전 승리로 그 막을 닫게 될 것입니다.
저의 생각이긴 하지만 우리의 두 번째 방안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실 김정은은 조직부장 현심과 고모부는 물론 이미 전에 숙청된 이영후를 비롯한 장의자 7인방에 대한 숙청을 단행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물론 그건 여기에 모인 여러분에 의해 그런 결말을 가져 왔습니다만 지금도 김정은은 우왕좌왕 하며 자기가 믿고 의지해야 할 사람조차 가려보지 못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만약 최용회가 숙청되면 김정은은 어쩔 수 없이 친인척통치의 새로운 막을 열려고 할 것입니다. 벌써 그 조짐이 확연히 드러난 것도 사실이고요.
김정출, 김예정의 정계진출은 새로운 집권파의 형성을 의미하며 그로 인해 우리와의 실권 싸움은 앞으로도 계속돼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애초에 그 뿌리를 완전 제거할 것을 말씀드립니다. 지금까지 진행된 우리의 작전과정을 김정은이 알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봅니다. 아니 벌써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더 이상의 피를 보지 않기 위해서도 저는 김정은을 제거하고 우리의 역할을 합리화 할 것을 이 자리에서 제의합니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모두들 얼어붙은 듯 눈길은 제가끔 다른 곳을 보고 있다.
“김정은 숙청이라, 이건 너무 큰 문제군. 혹 자네 개인원한 때문에 그런 제의를 하는 건 아닌가?”
중동 출장자가 물었다.
“물론 그런 사안도 배제할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아무런 자격도 실권도 영도능력도 없는 자를 계속 최고수위에 앉혀 놓고 있을 필요가 무엇입니까?”
“음,,,”
출장자가 주춤하자 이번엔 다른 사람이 말했다.
“뿌리가 중요한 거 아니오, 수십 년 간 이 나라를 통치한 선대수령에 관해 나라 전체 인민의 인식을 아직은 바꾸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구”
“그렇다면 지금 도탄에 빠진 우리 인민이 아직도 백두혈통에 관한 숭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고 보십니까?”
“무슨 말인지는 알겠지만 원래 이 인식이라는 건 쉽게 바뀌지 않아요. 태조이성계가 고려를 무너뜨리고 왕조를 선포했을 때 백성들이 모두 땅을 치며 역적의 왕좌 찬탈을 개탄하며 도처에서 무장봉기를 일으켰던 것처럼 말이요.”
“하지만 이성계 왕조는 오백년이란 통치를 이어 왔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다릅니다. 다는 모르시죠? 20여년에 걸친 식량공급중지와 함께 주민들은 배고픔에 허리를 졸라매며 어서 이 나라의 정치가 바뀌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방금 거론된 백두혈통에 관한 이야기라면 그건 김정은조차 부인하는 일임을 말씀드립니다.”
“그건 어떻게 하는 소리요?”
“직접 들어 보십시오.”
서재은은 갖고 들어 온 가방에서 무엇인가 찾았다. 그가 꺼낸 것은 여 스파이들이 흔히 갖고 다니는 머리핀 녹음기였다. 서재은은 그걸 TV스피커에 연결했다. 버튼을 누르자 술에 취한 듯한 김정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 나는 말이야 아직도 백두혈통이라고 자처하는 놈들 몽땅 죽여 버릴 거야 더 이상 내 앞에서 그 따위 내력으로 뭔가 한몫 잡아보려 한다면 다 죽여 버릴 테야.
-경애하는 원수님은 순수한 백두혈통인데 왜 그런 말씀을 하셔요. 제 편을 죽이면 안 되지 않습니까.
아직은 앳된 여자의 목소리가 묻는다.
-너 몰라서 그래, 그깟 혈통이 뭐가 그리 중요한데 이제부터 그런 혈통을 전면에 들고 나오는 놈은 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다 죽여 버릴 거야.
-무서워요 죽인다는 말 이제 하지 말아줘요 네?
서재은은 여기서 녹음기버튼을 눌러 중지시켰다.
“상대 여자는 대체 누군가?”
“네. 선우향입니다. 모란봉 악단 바이올린 연주자입니다. 요즘 김정은은 이 어린 여자와 원심관에서 동거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머리핀은 자네가?”
“네. 선우향을 이용해 제가 그 여자의 머리에 끼워 준 것입니다.”
“그랬었구만, 그러니까 자네가 그날 파티에 연주자로 참가하려 한 건 이런 정보를 뽑아내기 위해서 그리해달라고 한 것인가?”
“네”
“참 놀라운 일이군, 어떻게 자네가 하는 일은 매번 전원을 투입하면 어김없이 기계가 돌아가 듯 이렇게 잘 맞아 떨어지는지,”
출장자가 놀라자 한 사람이 그에 쌍수를 친다.
“그러게 말입니다. 김정은은 그날 서재은의 바이올린 연주를 듣고 아마 첫 여자의 향수를 아주 진하게 느꼈나봅니다. 그날 밤으로 선우향을 곁에 불렀으니까요.
결국 여자의 향기에 빠져 지금 그게 어떤 함정인지 모르고 헤덤비는 것 같습니다만 놀라운 건 바로 재은의 세밀한 판단입니다. 결국 코에 걸어 끌어냈으니까요. 재은의 말이 맞습니다. 정치란 정자도 모르고 오직 선대수령의 후손이라는 한 가지 명분으로 코를 세우는 젊은 애 역시 살려두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한 가지 사실이 더 있습니다.”
서재은은 그렇게 말하며 다시 머리핀을 작동시켰다. 전화를 거는 것 같은 음성이 다시 선명하게 울려나왔다.
-보위부장, 내 그간 여러모로 생각해 봤는데 아무래도 그자들을 가만 두어서는 안 될 것 같아,,, 아 거 조연진과 김경욱이 말이야,,, 황병시는 믿을 수 있어도 그자들은 못 믿겠어. 현심부장이 그 날 파티에 일부러 찾아와 참정이랍시고 내게 도전한 것도 바로 그 자들이 뒤에서 입김을 분 것 같아,,, 현심을 미워하는 내 심리를 이용해 그를 사살하게끔 만들었다는 얘기지,,, 그래? 설사 아니라 해도 내 눈엔 그것들이 거슬려, 그러니까,,,
말은 끊겼으나 좌중엔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갑자기 드리워진 무거운 고요다.
“재은아,”
출장자가 나직이 부른다.
“네.”
출장자는 눈에 건 커다란 선글라스를 벗었다. 조연진이다. 나머지 두 사람도 이어 선글라스를 벗는다. 불빛에 드러난 얼굴들엔 자못 긴장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서재은도 긴장한 눈빛이었다.
한 발 다가서는 조연진의 얼굴엔 경계의 빛이 가득했다. 그런 눈빛을 외면하며 서재은은 자기를 쳐다보는 두 사람에게 시선을 돌렸다. 김경욱과 황병시다. 평시 직접 신분을 드러내고 대화해 본 적은 없었지만 서재은은 두 사람의 얼굴을 익히 기억하고 있었다.
서재은은 비로소 이 세 사람이 처음으로 자기를 경계한다는 것을 안 것 같다.
이유라면 머리핀에서 울려나온 말 때문일 것이었다.
결국 서재은의 친아버지인 현심은 이 사람들의 각본에 따라 움직이다가 김정은에게 사살되었다. 왜? 그건 이제 더는 지도부거물로서 자격을 상실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리라, 그렇다면?
조연진도 이 자리에서만은 몹시 당황스러웠다. 드러난 사실에 관한 서재은의 반응이 무척 신경 쓰였기 때문이었다.
정이 없는 아비라 해도 그 아비를 죽게 만든 사람들에 대한 분노를 충분히 느낄 수 있는 딸이기도 했다. 이 상황에서 조연진 뿐이 아닌 나머지 두 사람도 심한 위구를 느낀 건 매한가지다. 한데 서재은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흘러나왔다.
“나는 아버지의 죽음보다 나를 구해 주고 지금 이 자리에 설 수 있게 해준 여러분에게 더 감사한 사람입니다. 아버지를 왜 죽도록 그곳에 내보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김정은을 죽이겠다는 저의 결심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여러분의 결심이 내겐 더 사활적입니다. 대답해 주십시오.”
세 사람의 입에서 가벼운 한숨이 나왔다. 안도의 숨 같았다.
“찬동한다면 손을 드시오.”
조연진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두 사람이 천천히 손을 든다. 조연진도 손을 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선글라스를 끼며 조연진은 매서운 눈초리를 서재은에게서 떼지 않았다.
“하다면 어떤 방법으로 그를 없애겠다는 거요. 신통한 방법이라도 있는 거요?”
김경욱이 불쑥 물었다.
“그 방법은 여러분께서 이미 저에게 주시지 않았습니까? 김정은이 선우향에게 빠져 있는 이상 테러는 언제든 가능합니다. 저는 끝까지 여러분의 손에서 움직이는 전사가 아닙니까?”
“알겠소. 무슨 말인지. 우선은 최용회부터 제거한 후에 다시 토의해 보도록 합시다.”
“알겠습니다.”
서재은이 자리에 앉자 조연진이 심중한 어조로 다시 입을 연다.
“김정은 제거는 여러 의미를 담고 있는데, 나 역시 이를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니요. 재은의 말을 듣고 보니 이젠 결심이 바로 서긴 섰네만, 사실 이건 큰 문제요. 이를테면 사변이라 할까, 현 실태에서 우리가 난을 일으키기엔 우리인민의 세뇌상태가 너무 심각한 것도 문제고. 혁명은 탄탄한 민심이 받침 되지 않으면 절대 성사될 수 없거든.”
“그렇게 고생하며 짐승처럼 살면서도 왜?”
황병시가 처음으로 입을 연다.
“저, 제가 한 마디 할까요?”
서재은이 조심스럽게 말한다.
“그래 말해 보게”
“발화점이 필요해요. 우리인민은 수십 년 간 압제 속에 살며 지금 분노를 잠재우고 있을 뿐입니다. 전 그렇게 봐요. 선구자가 있다면 반드시 그 분노가 폭발하리라 믿고 싶습니다. 불꽃이 필요합니다.”
“불꽃?”
세 사람이 약속이나 하듯 서로 마주본다.
“제가 한 번 해볼게요. 승산이 있습니다.”
“어떻게?”
서재은은 한참 설명했다. 다 듣고 난 세 사람의 입에서 일시에 탄성이 터져 나온다. 약속이나 한 듯 와락 자리에서 일어나 서재은의 손을 잡아 흔들었다.
“역시 자넨,,, 천재야.”
조연진이 눈을 슴벅였다. 네 사람이 손을 포갠다. 모두의 얼굴이 환해졌다. 다만 슴벅이는 조연진의 눈가에 이상한 광채가 한 번 번뜩였다. 만약 선글라스를 끼지 않았다면 그러한 눈빛을 서재은은 분명 알아보았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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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12-09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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