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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사회
탈북문학

'포 플라워' 제 18화

이지명 작가

글 | 신준식    필자의 다른 기사 보기

 
포 플라워 (four flower)
-작가 소개-
 
이지명
 
전 북한작가
청진1사범대학 어문학부 통신대학 1985년 졸업.
작가동맹 현직 작가로 있다가 2003년 탈북 2004년 대한민국 입국
한국소설가협회회원,
 
Intro
북한망명작가 이지명의 장편소설 <포 플라워, four flower>.
2014년 11월 10일부터 뉴포커스에서 연재를 시작합니다.
연재에 앞서 이 작품에 대한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이 소설은 김정은의 첫 사랑이었던 주인공 서재은의 복수를 통해 북한정권 내 실세들의 권력암투의 추악함과 독재정치의 비정함을 그려낸 소설입니다. 소설은 북한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들과 실존 인물들에 기초해 이야기를 펼쳐갑니다. 단 김정일과 김정은을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은 실명에서 조금씩 변형된 이름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제가 이 소설을 쓰기로 마음을 먹은 이유가 있습니다.
자유롭게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나갈 수 없는 불합리한 체제 속에서 사상과 노선에 목숨을 걸어야만 하는 인간의 운명은 도대체 얼마나 비참해질 수 있는지를 그려 보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소설 속 여주인공 서재은은 북한에서 살아가야 하는 가장 평범한 존재를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그녀는 한때 열렬히 사랑했던 자신의 첫 남자 김정은을 죽이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칩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녀가 복수를 이루어 내는 모든 과정을 저는 이 소설에서 그려가려고 합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통해 북한의 현 정권 실세들이야말로 수천만 인민들의 몸과 영혼에 서식하는 기생충과도 같은 무리임을 증명해 보이고 싶습니다. 불과 수십 킬로도 떨어져 있지 않은 저 휴전선 너머에서 벌어지는 참상과, 소위 ‘최고 존엄’이라 일컬어지는 존재의 실체와, 그 기이한 실체를 떠받치고 있는 이상한 집단의 진면목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북한으로부터의 망명 작가들만이 알 수 있고, 전할 수 있는 이런 이야기를 통해, 이곳의 독자들이 ‘인간’을, ‘인간의 삶’을. 그리고 ‘인간의 삶의 가치’를 다시 한 번 사유하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피를 찍어 쓰는 심정으로 연재를 시작하는 장편소설 <포 플라워, four flower>에 독자 분들의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14년 10월 20일 부악문원에서 이지명
 
목차
1>상처의 반란
2>참정의 눈
3>대장 집 안방
4>무도의 총소리
5>허탈
6>마지막 진술
7>딸을 찾는 아비
8>충신의 내면
9>음모의 합작
10>서재은의 계략
11>군중반향
12>현송원의 마지막 인사
13>3인방의 힘
14>다섯 번째 핀 사화
15>안개의 유혹
16>아방궁의 총성
17>겉과 속
18>여자의 향기
19>3인방의 정체
20>응당한 피해자와 억울한 피해자
21>하늘에 던져진 발자취
22>두 여자
23>김원흥의 역습
24>시련의 언덕
25>반전의 여인
26>개들의 개싸움
27>사화 여섯 번째로 피다
 
<18>여자의 향기
 
중이동에서 원심관으로 온 김정은은 화려한 내부인테리어에 현혹된 듯 방에 들어가지 않고 대기실에서 한참을 서성거렸다.
원심관은 아버지 때 지은 별장으로 조금 오래된 건물이지만 외국에서 수입한 자재로 인테리어를 다시 해 현란한 내부 장식을 뽐내는 곳이다.
벽화도 세계적 명화를 내다 걸었고 탁자, 의자, 주단, 심지어 물 주전자에 물 컵까지 어느 것 하나 국산품이 없다. 아마도 스위스 유학경험이 있는 김정은을 위해 누가 기발한 착상을 한 것 같다. 김정은 역시 그래서 이 원심 관에 오기를 즐기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 이 밤엔 그 모든 장식들이 그의 관심에서 멀리 벗어난 것 같다.
대기실 소파에 앉은 그는 초조한 낯빛으로 전화기만 지켜본다. 오래 기다리지는 않았다.
그가 대기실 소파에 앉은 지 20분 정도 됐을까, 전화기는 침묵을 지켰지만 대신 대형 스크린에 불이 들어왔다. 차에서 내려 이쪽을 향해 서 있는 여자의 모습이 스크린을 채운다.
바로 그 여자다. 기분은 좀 나빴지만 연주 하나만은 끝내 주던 그 여인, 바로 선우향이란 여자다. 바이올린 소리에 잃어버린 첫 여자를 생각하게 했던 그 연주자,
김정은은 반가운 김에 손을 들어 휙 원을 그었다. 그 다음 곧바로 침실로 향했다. 들어가면서 그는 연신 싱글벙글한다.
김원흥에 대한 믿음이 가슴 그들먹이 차올라서였다.
이 각박한 때 그런 충신이 가까이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벅찼다. 김정은은 그렇게 생각했다. 현심을 보란 듯 죽여 버렸지만 그가 죽는 순간 오히려 그 자신이 더 먼저 공포에 떨었었다.
그렇게 죽임으로서 수령의 파워를 한 번 아래일꾼들에게 각인시키려 한 그 나름의 돌발적 행동이었다. 정작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한 늙은이의 모습이 영원히 잊혀 지지 않을 영상으로 오래오래 눈앞을 어지럽힐지는 이제부터 두고 봐야 했다. 김원흥의 앞에서도 가만있지 못하고 떨리던 육신은 그 앞을 벗어난 지금도 여전하다.
침실에 들어 온 그는 탁자위에 놓인 입생로랑 담배 곽을 터트려 한 대 뽑아 물고 성냥을 그었다. 똑 똑 노크 소리가 알릴락 말락 들린다.
그는 얼결에 비스듬히 침대에 누웠던 몸을 일으켜 제꺽 문을 열었다. 샛별 같이 반짝이는 눈이 정면으로 부딪쳤다.
“들어와요.”
늘씬하고 정감 있는 체형을 가진 선우향이 바이올린케이스를 들고 들어섰다.
“그걸 놓고,”
그녀를 황홀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김정은의 숨결이 차츰 정상을 벗어난다.
아버지 벌 되는 어른에게조차 서슴없이 반말과 하대를 일삼던 젊고 방종한 입에서 깍듯한 존댓말이 흘러나왔다는 것도 감감 잊은 채 김정은은 들어 온 청순한 여자의 육신을 경이롭게 바라보았다.
이 여자가 조금 전 현심을 사살한 현장의 무대에서 본 그 바이올린연주자가 맞느냐? 하는 의문 같은 것을 가져 볼 여력은 이미 사라진 것 같다.
조금만 주의를 돌려도 그 여자가 아니라는 결론에 이를 수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크게 시야를 가득 메운 것은 싱싱한 여자를 어서 품에 안고 마음껏 희롱하고 싶은 욕망이었다.
지금 선우 향의 눈에는 아양이 아닌 의문이 가득 서렸다. 그런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은 듯 김정은이 한마디 내비친다.
“너, 여기 왜 왔는지는 알고 있어?”
처음과 달리 반말이다.
“네, 경애하는 원수님이 절 부르셨기에 왔습니다.”
선우 향의 고개가 숙여졌다. 맑은 목소리다.
어쩌면 세상세파에 전혀 때 묻지 않은 순진한 목소리이기도 하다. 이윽히 여자를 들여다보던 김정은이 초인종을 누르자 기다렸던 듯 두 명의 여자가 들어와 선우 향을 데리고 나간다.
잠시 후 목욕재개하고 하르르한 인조 모본단으로 만든 잠옷을 걸친 선우향이 다소곳이 머리를 숙이고 들어섰다. 속옷을 입지 않아 그 윤곽이 그대로 드러난 볼록한 가슴과 함초롬히 젖은 머리 칼, 아침 이슬 같은 그 청신함만으로도 앞에 선 수컷의 욕정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여자의 자태를 이윽히 들여다보는 김정은의 얼굴에 느슨한 미소가 어린다. 잠간 사이지만 나가서 일장 훈시를 들었는지 선우향의 태도는 처음과 달랐다.
입가엔 미소가 어렸고 수컷을 쳐다보는 눈엔 수긍의 부드러움까지 흐른다.
그걸 느꼈는지 김정은은 머리를 끄떡이며 양 팔을 벌렸다. 선우 향은 냉큼 그 품에 몸을 맡긴다. 거친 숨소리가 너른 방안을 점차 점거하기 시작했다.
“너 처음이야?”
여자의 가슴을 주무르며 던진 김정은의 목소리는 조금 떨리는 듯하다.
“뭐가요?”
“남자가 처음인가 하는 거지.”
“네. 두 번째면 여기 들어오기나 하겠어요?”
“그게 무슨 소리야,”
“아까 다른 방에 들어갔을 때 이미 깐깐한 검사를 받았어요.”
“그래? 음,,,”
김정은은 만족해 허허 웃었다.
“날 앞으로도 책임져 줄 거죠?”
여자가 갑자기 당돌한 질문을 한다.
“당연히, 내가 누구야”
“저, 부인님께서 아시면 절 가만두지 않을 텐데요.”
김정은의 손이 여자의 가슴에서 주춤 멈췄다. 긴장한 순간이다.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자 앞에서 뱉은 철없는 여자의 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건 걱정 마, 걔보다 내가 더 높거든”
김정은의 대답은 의외였다. 아마도 이 순간을 치미는 화로 바꿀 용기는 없는 것 같았다.
“그래도 무서워요. 난 원수님이 좋은데 그런데요, 부인님이 계신데 왜 절 안으시나요?”
“흐흐흐 그거야 네가 좋아서 그러지,”
“남자는 여자가 좋으면 첫 만남에도 이렇게 옷부터 벗기나요?”
“응?”
“제가 듣기로는 이렇게 하는 게 바람이라 하던데 그럼 원수님도 지금 저와 바람을 피우시는 건가요?”
어허 이것 참 이렇게 순진한가? 갑자기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 듯 김정은은 멍하니 여자를 바라본다.
“저는 사실 원수님을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뭐라? 그럼 내가 짐승이야?”
“그런 말이 아니고요. 신으로 알았습니다.”
순간적으로 돌변했던 김정은의 표정이 다시 완화된다.
“신이라,,, 듣기 싫은 소리는 아니군, 아주 좋아.”
“그리고요, 신의 신임을 받는 사람은 신이 되는 줄 알고요. 원수님과 발가숭이로 한 몸이 되었으니 저 이제 신이 된 게 맞죠?”
맞는다고 해야 하나 틀린다고 해야 하나, 김정은은 얼른 대답하지 못한다.
선우향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난 이젠 세상에서 가장 큰 영광을 안은 사람이 됐어요. 고맙습니다. 원수님”
여자는 발가벗은 몸을 일으켜 세우고 깊숙이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한다.
“너 몇 살이지?”
“스물 한 살이에요.”
“스물한 살? 좋아. 이제부턴 넌 신이야. 나의 신이란 말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
“네.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며칠 동안 여기서 나와 함께 지내도 되지?”
“네. 악단에서만 뭐라 하지 않으면,,,”
“악단도 이젠 네 발 밑에 있다고 생각해. 그까짓 것들이 뭐라고”
“아, 생각해 보니 그러네요.”
선우향이 다시 벗은 김정은에게로 덮쳐 왔다. 여리고 만문한 피부감촉이 너무 좋은 듯 김정은의 입이 귀밑까지 째진다. 그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순진해서 좋아, 때 묻지 않아서 좋고, 이런 게 새것의 맛인가?”
여자는 분명 그 중얼거림을 들었음에도 아무내색 없이 남자의 뺨에 야들한 볼을 살래살래 비빈다.
“잠간,”
김정은은 여자를 밀어냈다. 왜 이러냐는 의문의 눈빛이 제법 간절했지만 김정은은 이윽히 여자의 눈빛을 들여다보다가 한 말 던졌다.
“너 바이올린연주를 한 번 해봐”
“예?”
“사향가 말이야, 그거 내 할아버지가 지은거야.”
“알고 있어요.”
“어서, 다시 듣고 싶어”
선우향이일어나 잠옷을 걸치려 하자 김정은이 고개를 흔들었다.
“알았습니다.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여자는 들었던 잠옷을 놓고 케이스 안에서 바이올린을 꺼내 가슴에 올렸다. 한 번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나서 손에 쥔 활을 부드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애절한 곡이 은은하게 흘러 나왔다.
내 고향을 떠나올 때 나의 어머니 문 앞에서 눈물 흘리며,,,
 
“재은이가 왔구나. 환생했어.”
김정은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봉긋 솟은 오른 쪽 하얀 젖 봉우리가 색기로 번들거리는 그의 눈을 흘러간 과거로 슬몃슬몃 이끌어 간다.
17년 전의 애틋한 추억이었다. 누나 나 누나 가슴 보고 싶어. 소년의 떨리는 말에 무랍 없이 웃어주며 그럼 봐, 하며 서슴없이 옷을 벗어주던 여인이 지금 다시 환생해 사향가의 아름다운 곡을 연주해 주고 있다.
그때 재은이도 늘 이 곡을 그에게 들려주며 너도 크면 꼭 위대한 사람이 되라며 활짝 웃어주었다. 파티 장에서부터 그의 가슴을 긁어 온 연주였다.
본인도 전혀 예상 못한 이상한 감정이었다. 자꾸만 저 어린 여자의 얼굴에 서재은의 모습이 오버랩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버지를 제발 살려달라며 하소하던 눈물진 얼굴이 애틋하게 떠오른다. 하나 다음 순간 망막이 벗겨지며 사나운 얼굴이 독을 품고 달려든다.
-정은아, 내 너를 반드시 죽여 버릴 거야,
버들가지 같은 손가락이 갑자기 발톱을 일군 맹견이 되어 사정없이 긁으려 달려드는 순간
정은은 어, 어 망각의 소리를 지르며 두 눈을 감았다.
바이올린소리가 멎었다.
“웬 일이세요?” 여자는 말했지만 정은은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멍한 눈길, 넋 잃은 허수아비 같은 남자에게로 악기를 내려놓은 여자가 조금씩 다가온다. 정은의 시선은 다가오는 두 개의 젖 봉우리에 박혔다.
아니다. 이건 분명 재은의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왜 누나의 가슴이 거기에 자꾸만 겹칠까, 무서웠다. 두려웠다. 그는 눈을 감았다. 다시는 뜨고 싶지 않다.
부드러운 손이 식은땀이 돋은 머리를 감아쥐었다가 축 늘어진 아랫도리를 감싸 쥔다. 타인의 부축을 받아서야 겨우 몸을 일으키는 노인처럼 그것이 서서히 허리를 펴는 순간 정은은 닿은 여자의 몸을 긴 팔을 들어 휘감아 안았다.
 
다음 날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눈을 비비며 침실을 나온 김정은은 유진우가 찾아왔다는 보고를 받고 어슬렁어슬렁 힘 빠진 걸음으로 대기실에 들어섰다.
 
원심관 대기실에서 잠간 김정은을 만나고 나온 유진우는 택시를 불러 타고 대동강 변 쪽으로 달렸다. 어쩐지 그의 행보가 몹시 급해 보인다. 왜 그러는지 알 수 없었지만 시급히 해결해야 할 어떤 일을 방금 김정은에게서 받은 듯 보였다.
대동강 변 쪽에 위치한 아파트에는 차용녀가 살고 있었다.
주인이 들지 않는 저택에서 용녀는 요즘 매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얼마 전 김정은에게 개패 듯 얻어맞은 어혈로 병원에 입원했던 이설희가 집으로 돌아왔다.
설희는 남편에게 맞은 분풀이를 용녀에게 몽땅 쏟는 상 싶었다.
물 떠와, 이걸 치워, 정원에 나가고 싶어, 청해(애완용 개 이름)가 어디 갔어? 찾아 온 청해를 설희는 품에 안았다가도 갑자기 홱 집어 던진다.
죽는 소리로 청해가 깨갱거리면 오히려 설희가 더 크게 웃었다.
청해의 고통이 즐거움으로 안겨 드는 것 같았다. 그게 다가 아니다. 별치 않은 일에 버럭버럭 화를 내기 일쑤고 심지어 용녀에게 쌍스런 욕도 마구 퍼붓는다. 그러는 그녀를 보며 용녀는 설희보다 그녀를 그렇게 만든 김정은을 속으로 죽어라 욕했다.
용녀로서는 그리 생각하고 증오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젊디젊은 남자가 부리는 변덕스런 행보는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처음부터 그랬다.
나라곳곳을 나다니며 만나는 사람마다 팔짱을 끼고 늘 곁에 설희를 대동하고는 손을 쥐고 마주보고 웃고 해서 저게 마녀보이구나 하며 어처구니없어 하는 사람들이 엄청 많았다.
나라백성모두가 먹을 게 없어 실실 쓰러지는데 아내치마폭에 싸여 흐덕흐덕 웃기나 하고 또 옆의 마녀라는 여자는 있는 치장 없는 치장 다하고 살찌고 영양 좋은 버들 입을 그때마다 봉긋봉긋 벌려주니 부러움보다는 혐오가 먼저 찾아왔다.
그러게 사람이란 건 항상 펼 자리를 보고 다릴 뻗으라 했다. 일반 놈팽이도 아니고 명색이 수령이란 자가 그건 대체 뭐냐는 아니꼬운 눈초리가 오뉴월 구더기 끓듯 득실득실한데 그것도 전혀 의식 못하니 바보인가? 바보보다는 천치에 가깝다.
옛 시절과 달리 여자에게 폭력을 일삼는 사내놈은 불알 뽑아 개를 주라는 세상이 요즘 세상인데 글쎄 체통이 없이 그게 뭐냐는 거다.
그렇지만 그런 것 때문에 용녀가 김정은을 전적으로 미워하는 건 아니다. 용녀로서는 반 주검이 되도록 제 여자 아니 국모를 개패듯 해대는 꼴을 본 이후부터 김정은이란 저 뚱땡이가 수령은커녕 사람으로도 안 보였다.
뭐 남편인지 개편인지 하는 작자에게 자기도 죽신하게 얻어맞아 봤다마는 저렇게까지 맞아보지는 못했다.
그 날 설희는 갈비뼈 석대가 부러졌고 장까지 파열돼 병원에 입원까지 했다. 하도 영악스러운 여자여선지 수술 한 번에 이내 회복하고 나왔지마는 받은 속 상처야 무슨 말로 치유할까,
무슨 일 때문에 고모부인 장승택까지 죽여 없앴는지 그것만 봐도 저건 천치보다는 악마라 해야 맞을 것 같다.
아무리 정치판이 너 잡아 네 고길 씹어 먹고 내 살 찌우는 살벌한 곳이라지만 짐승도 동족의 고긴 안 먹는다 했는데 먹다먹다 어찌 고모부까지 잡아먹느냐 이거다. 핏줄이 달라서? 사람이 핏줄로 사는가? 살아 온 세월이 얼만데, 사람이 정으로 사는 거지, 그간 수십 년을 오고고 모여 살았지 않느냐,
집일을 보는 사람이 십 수 명은 잘되지만 설희는 요즘 무슨 일에서나 용녀만 찾는다.
이것도 일종의 신임인가? 이 집에 처음 왔을 때 같아선 감지덕지 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개똥이다. 요즘은 도무지 사람 사는 집 같지가 않다. 아예 집에 발조차 들이지 않는 주인장,
물론 한 짓이 있어 뭣해 그러긴 하겠지만 그래도 그렇지, 어차피 같이 가야 할 국모인데 계속 이 모양으로 살 수야 없지 않은가? 먼저 좀 손을 내 밀면 안 돼? 지금까지 보면 둘은 자주 싸우고 며칠 씩 말도 섞지 않곤 했는데 결국에는 늘 설희의 승리로 끝나곤 했다.
한데 이번엔 문제가 아주 심각해진 것 같다. 이젠 이집에 들어온 지 5년째를 맞는다.
서당 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했은즉 용녀도 많은 세월을 같이 있어 이젠 이집 풍속과 사람 됨됨이를 속속들이 알게 됐고 또 거기에 익숙해져 갔다.
익숙해 졌지만 폭력과 욕설, 냉대에 따른 외도, 득실대는 미녀, 아니 그건 미녀의 껍데기를 뒤집어 쓴 창녀다. 정말 그런 것들은 아무리 애써도 좋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어쩌다 오늘은 휴일을 맞았다. 애들도 흠씬 커서 큰 애는 대학에 붙었고 둘째도 예술학원 예과생이라 둘 다 기숙사에 나가있다.
모처럼 받은 휴일이라 집에 묻혀 있기 싫어 점심을 먹고 난 오후에는 곱게 화장을 하고 대동강가로 나왔다. 주일이 아니어서 그런지 몇몇 낚시꾼들만 보이고 주위는 쥐죽은 듯 고요했다. 환경이 그러하니 혼자 빈둥거리기도 멋 적어 이내 돌아서서 아파트로 돌아왔다. 잠이나 실컷 자둬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그녀가 문 걸쇠를 열고 집으로 한 발 들여놓는데 웬 남자가 뒤로 다가선다.
깜짝 놀라 돌아보려하니 그냥 들어갑시다. 하고 남자가 말한다. 왠지 그 목소리가 귀에 익고 집게로 꽉 집어 버리듯 육신을 옴짝 못하게 한다.
그 순간부터 두근거리는 가슴을 애써 진정하며 들어오세요. 하고 말하며 먼저 방에 발을 들였다.
남자는 다른 사람도 아닌 바로 김정은의 전, 책임부관 유진우다. 이번 사건 때 최용회에게 잡혔다고 들었는데 왜 날 찾아 왔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거실 소파에 앉기 전 방을 한 번 휘, 둘러보던 유진우가 집이 참 좋습니다. 하며 웃는다.
“다 경애하는 원수님 덕분이지요.”
대답을 하면서도 잡힌 사람이 어떻게 풀려났을까? 하는 의문에 흘끔흘끔 눈치만 본다.
오랜만에 남자와 함께 아무도 없는 방에 있으니 몸이 오그라들어 행동하나하나가 어색해만 진다.
“참 내 정신 봐, 커피 드릴까요?”
갑자기 할 일이 생각난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고개를 끄떡이는 유진우를 흘끔 쳐다보고 나서 용녀는 주전자에 물을 끓였다. 외화상점에서 파는 블랙커피 두 잔을 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커피 잔을 들고 두 사람은 한 번 마주보고 나서 후, 하고 커피 김을 불었다.
참 욕심나게도 생긴 남자다. 나이는 별반 차이가 없지만 유진우는 아직 장가도 가지 않은 노총각이다.
용녀도 처음 그가 독신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참 평양 여자들은 몽땅 다 바보천치라고 욕을 해댔다. 이렇게 잘난 남자를 가만 두다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 잘 다듬어진 방망이처럼 단단한 체구가 슬금슬금 다가와 자기 몸을 꽉 부둥켜안아줬으면 좋겠다.
지금 상황에 용녀로서는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글쎄 책임부관이라는 높은 자리에 있던 사람이 한갓 하인에 불과한 자기 같은 여자한테 이렇게 찾아 올 이유가 무엇이냐, 이거다. 그런데 왔다. 왜? 뻔하잖은가, 날 여자로 보고 온 게지, 밉지 않은 남자여서 그런지 그쯤 점찍으니까 갑자기 가슴이 활랑 댄다.
“무슨 일로 오셨죠?”
용녀는 쿵당거리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며 조심스레 물었다.
“확인할 게 좀 있어서요.”
“예?”
“이젠 2년 전 일인데 기억하시겠는지 모르겠군요.”
애고, 참 어쩜 말도 저렇게 사근사근할까, 굵은 목청 또한 얼마나 남자다운지 모르겠다.
“말씀해 보세요.”
“원수동지께서 첫 부임을 하시던 전 날 일을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보세요. 어떤 일도 좋습니다. 그 날 어디를 가셨고 가셔서는 뭘 하셨고 누구를 만났고 하는 걸 말입니다.”
검은 눈이 직시한다. 그 눈이 마주치는 순간 용녀는 눈을 깔았다. 이제는 가슴을 방치로 두들긴다. 이놈의 심장 미쳤나? 왜 이러지? 근데 이 사람은 대체 뭘 생각하라는 거야, 심장이 이리 요동치는데,
“생각 안 나십니까?”
다시 들리는 말소리는 꿈결에 들리는 소리 같다. 아무런 판단도 할 수 없었다. 당장 남자의 손이 스멀스멀 자기 피부에서 헤엄치는 것 같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이게 무슨, 후다닥 일어난 용녀는 급히 화장실로 뛰어 들었다.
찬물을 틀어놓고 얼굴을 틀어박았다. 시원했다. 그랬지만 심장은 여전히 쿵쾅쿵쾅 뛴다.
와락 윗도리를 벗어버리고 발랑 솟아오른 젖꼭지에 거푸 찬물을 끼얹었다.
가슴에서 문문 김이 피어오른다. 뜨거워진 육신이 조금 안정이 된다. 거울을 들여다보니 화장이 지워져 눈귀 주름이 얼기설기 드러났다. 용녀는 그때서야 피씩 웃었다.
정신 빠져도 한참 빠졌지, 이 염치없는 몸뚱이야. 네 주름을 좀 생각해, 오래 굶은 육 덩어리가 꼴값 떨고 자빠졌네. 남에게 말하듯 그리 지청구를 해대고 나서야 용녀는 다시 옷을 주어 입고 조심히 진우 앞에 다가섰다.
“미안해요.”
다소곳이 머릴 수그려 인사를 하고 나서 살며시 소파에 앉는다.
“괜찮습니다. 생각은 나셨습니까?”
“네. 그 날은 특별한 날이라서 얼른 생각이 나는군요. 근데 무슨 일이 있습니까?”
“아니 그냥 좀 알아볼 게 있어서요. 차근차근 말씀해 보세요.”
“사실 뭐 젊은 과부라는 게 생각할 게 뭐 있습니까? 출근 전까지만 해도 난 잠을 자지 못해 몹시 피곤했지요.”
“왜 잠을 자지 못했습니까?”
“예? 에이고, 아시면서, 제가 혼자난지 얼마나 오래 됐습니까? 배는 부르고 기운은 넘쳐나고, 마개 생각보다 더 큰 게 있겠어요?”
용녀는 피씩 웃었다. 알릴락 말락 작은 소리로 마지막 말을 얼버무렸는데 그걸 유진우가 놓치지 않고 들었다.
“마개라니요? 그건 무슨 말입니까?”
“들으셨어요? 에구 참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남자가 왜 이러세요. 날 놀리시네.”
“아, 아닙니다. 놀리다니요. 마개란 말 처음 들어서,”
“그렇긴 하겠네, 함경도 사투리니 평양에서 나고 산 사람이 어찌 알겠어요. 마개란 여자에겐 남자라는 뜻입니다.”
“아, 예에,,, 예?,,,그러니까,,,”
“흐흐 아시면서,,, 죄송해요.”
이런 제길, 이게 무슨? 참자, 참아, 참자 유진우는 울컥하는 속을 억지로 내리 누른다.
살다보면 별 해괴한 일이 다 생긴다. 뭐? 남자가 마개라고? 결국 무얼 틀어막는다는 뜻인데 아니 그럼 내가 그런 발정 난 구멍이나 틀어막는 마개로 보여 지금 이 지랄인가?
내가 그렇게 만만해 보이는 건가? 당장 일어나 주리를 틀고 필요한 정보를 짜내고 싶지만 그러면 일을 더 그르칠 수 있기에 참는 수밖에 별도리가 없었다.
여자란 요물이라더니 그 말 그른데 없다.
만날 살벌한 일에만 쫓기던 유진우로서는 여자에 대해 아는 것도 없거니와 이럴 경우 비틀리는 속과 달리 어떻게 해야 정보도 얻고 무난하게 넘어 갈까 하는 뾰족한 방도도 없었다.
할 수만 있다면 아주 자연스럽게 이 일을 넘겨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김정은에게 돌아갈 길이 영영 막혀 버릴 수도 있다.
장승택의 처형에 재수 없이 걸려들어 하마터면 인생을 조질 번 한 것이 지금 생각해도 등골이 서늘해진다.
최용회에게 체포됐을 때 영락없이 죽었구나, 하고 모든 걸 포기했는데 뜻밖에도 이렇게 살아나왔다. 살았을 뿐더러 다시 재기할 수 있는 기회까지 얻게 됐다.
오늘 원심관에 찾아갔을 때 김정은이 다시 책임부관으로 일하고 싶으면 내 시키는 일을 한 번 잘해 보라고 했다. 그래서 발딱 일어나 내 목숨은 원수동지께서 준 것이니 이 자리에서 죽으라면 당장 죽겠습니다. 하고 기운차게 말했다.
김정은은 손수 코냑까지 따라 주며 은밀히 조사해보라고 내어 준 것이 지금 주머니에 있는 협박 쪽지다.
 
-정은아, 널 반드시 내 손으로 죽여 버릴 거야.
 
그걸 보고 처음엔 하늘이 두 쪽 난 듯 꿈쩍 놀랐다. 이게 누구 짓인지 알아내면 다시 복귀할 거라는 말을 듣고 지금 은밀히 조사에 착수했다. 글체로 봤을 땐 이건 여자의 짓이 분명했다. 김정은은 아무 말도 안 했지만 그 순간 유진우는 무도에서 놓친 서재은이란 여자에 대해 다시 관심을 돌렸다.
그러나 이 쪽지가 나온 이후 무도사건이 벌어진 만큼 그 여자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무인도에 갇힌 여자가 쪽지를 보낼 수는 없는 거니까, 그럼 누구란 말인가? 그는 협박 메모를 쓴 자가 여자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에 미쳤다. 그렇게 오도해 보이도록 꾸밀 수도 있으니까,
집무 첫날 입고 나간 양복 주머니에서 쪽지가 나왔다면? 그걸 물고 집요하리만치 생각을 굴린 결과 오늘 이렇게 용녀를 찾아오게 된 것이다.
김정은이 입는 옷은 매일 주석궁전용세탁소에서 배달된다. 수화물로 배달하는 것이 아니라 용녀가 직접 세탁소에 가서 매일 저녁 아니면 아침에 받아온다. 그렇다면 용녀가?
에이, 이따위 촌 여자가 무슨, 그럴만한 이유도 없고, 그럼 설희가?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고모부와 놀아나는 여자고 보면 안 그럴 거라는 담보는 없다.
설희가 그랬다면 시기싸움으로 그랬으리라 믿어졌다. 그렇다면 조사할 맛도 없어진다.
전 인민이 다 아는 국부, 국모인데 그런 일로 갈라놓을 수는 없을 테니까, 하지만 만약의 경우 진짜 테러범이 그랬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지금 진우가 은밀히 이걸 캐는 것도 바로 그것을 염두에 두고 이러는 것이었다. 김정은도 그 때문에 신경을 쓰는 것이고,
진짜 테러범이라면 세탁물을 들고 가는 용녀가 가장 적합한 대상일 것이었다.
그래서 찾아 온 것인데 이 여자는 지금 욕정에 불타올라 왕청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되지? 그냥 여자의 요구를 들어 줘? 하고 생각하자 뭔가 울컥 치민다.
이건 참,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어찌 상 위에 올라앉은 음식이 상다리에 관심을 두는가?
조사고 뭐고 나가려는데 용녀가 한마디 한다.
“그날 말예요. 난 기사 아저씨하고 같이 나갔는데,”
“어느 기사요?”
“용남 기사요.”
김정은 저택 후방보급 기사다. 관리부에 적을 두고 전문 저택식품운송을 맡아 하는데 모두 중앙당 심의에 합격한 자들이라 운반했다는 한 가지 조건만으로 심문대에 올려놓을 수도 없다. 그렇지만 이건 수백 명을 억울하게 죽인다 해도 반드시 캐내야 하는 사항이다.
유진우는 다시 소파에 주저앉았다.
“그때 혹 아주머니가 자리를 비운 적은 없습니까?”
“글쎄 있던가? 없는 것도 같고, 있는 것도 같고, 하도 오래돼서,,,”
“성실하게 대답해야 해요. 이건 원수동지의 안전과 관련된 심각한 문제니까,”
의아한 눈빛으로 말똥말똥 그를 쳐다보던 용녀가 갑자기 얼굴이 새침해진다.
“내 알기로는 쫓겨났다고 그러던데 지금 누구 앞에 와서 행악질이죠?”
유진우는 말문이 막혔다. 정말 듣고 보니 그렇다. 어리어리해 보이기만 하던 이 아주머니에게 이런 당찬 구석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행악질이 아닙니다. 그냥 물어보는 것이지.”
“오래된 일이라서 잘 기억이 안 난다는데 왜 자꾸 그래요. 대체 무슨 일인지 말이라도 시원히 하던가, 밑도 끝도 없이 옛날 일이나 들춰 보구, 참”
용녀가 우쩍 일어나더니 마셔버린 커피 잔을 차 판에 담아들고 싱크대로 휭, 가버린다. 뒤뚱뒤뚱 실팍하게 살이 찐 엉덩이가 춤추듯 걸어간다.
(쳇 그놈의 엉덩이 안 주물러줘 저러는가?)
그냥 물러갈 수가 없었다. 뭐가 있는 건 분명하다.
유진우는 슬쩍 일어나 쫙쫙 쏟아지는 물에 커피 잔을 헹구는 용녀의 허리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왜 이래요?”
“그냥”
“이러려고 우정 온 거죠?”
“그렇다면 그렇고,”
유진우는 뭐라 대꾸할지 몰라 나오는 대로 주어 섬긴다.
“언제부터 날 좋아했죠?”
용녀는 되도록이면 홍안의 목소리를 내려고 애쓴다.
남조선에서 만든 TV연속극을 설희와 같이 보면서 많이 익혀둔 말이다. 그쪽 에미나이들은 왜 모두 물 찬 제비 같이 쪽쪽 빠졌는지 모르겠다. 잘 먹고 잘 발라서 그런가, 말씨도 사분사분하고 남자를 홀릴 땐 여우처럼 눈웃음을 살래살래 치는데 같은 여자인 자기도 쩌릿쩌릿 오금이 저렸다. 해서 그걸 흉내 내느라 열심히 연습했다.
오늘처럼 이런 날이 꼭 올 것이라고 믿으면서, 지나온 경험이 그랬다. 기다리면 남자는 언제든 찾아온다고, 그런데 진짜 찾아왔다. 용녀는 속으로 흠씰흠씰 웃으면서도 겉으로는 톡톡 쏘는 체 했다. 이것도 다 그 남조선 연속극에서 따낸 거다.
이 녀석이 홀딱 넘어올까? 아니 벌써 넘어왔다.
“좋아하는 게 아니라 사랑했소. 흐흐”
“정말?”
유진우의 말에 화닥닥 놀란 용녀는 저도 모르게 두 손을 가슴에 올린다. 잠잠하던 심장이 다시 파닥파닥 뛴다. 두 눈에선 황황 불길이 치솟고,
(제길, 불이 붙었네. 지금 네게 내 귀한 몸 맡기기로 했다만 언제든 기회만 되면 꼭 죽여 버릴 거야. 쌍)
유진우는 와락 용녀를 그러안았다. 대동강 가에 나가느라 잔뜩 줘 발라서인지 짙은 향내가 용녀 몸에서 진동을 한다.
(이런 머저리, 향수 칠 줄도 몰라갖고, 그저 많이 치면 좋은가 하나보지?)
안방 침대에 오르자마자 발가벗은 둘은 물고 빨며 서로를 탐닉하기 시작했다.
“아갈라,”
용녀가 함북사투리로 비명을 지른다. 진우가 헤덤비며 용녀의 가슴망울을 슬쩍 물어놨기 때문이다.
“왜 이럼까?”
“난 그러면 좋아할 줄 알고, 언젠가 나도 호기심 삼아 그런 영상 피뜩 봤는데 여자가 꽉 물라고 그러데, 남자가 진짜 물더라구, 피가 나오는데도 여자는 좋다고 소리를 지르구. 난 그래도 살짝 물었는데,”
“당신 이런 거 처음이라우?”
“그럼 총각이 첨이지 두 번째겠소?”
“아이고 기차라, 제대로 할 줄이나 안다우?”
정작 남자가 덮쳐오니 안도감인지 용녀의 입에서 북방사투리가 쫑쫑 빠진다.
기왕 이렇게 된 거, 하고 유진우는 용을 썼다. 일을 치르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수토끼흉낼 내고나서 멍하니 앉아 여자를 쳐다보노라니 민망하기 짝이 없다.
유진우는 훌렁 일어나 화장실에 들어가 샤워기를 틀고 몸을 씻었다.
(이게 뭐야, 이따위 맛보자고 알랑 방구 낀 거 아닌데)
용녀는 서운한 눈으로 화장실로 들어가는 유진우를 바라본다. 그러거나 말거나 자기 할일은 다 했으니 이젠 네 차례다 하는 식으로 열린 문이 쾅, 닫힌다.
천만에, 이놈의 짜슥, 기운이 아직 많이 남았을 테니 일은 이제부터다. 불은 네가 질렀다만 빠지는 건 절대 네 맘대로 안 될 게다, 용녀는 모처럼 찾아 온 기회를 놓칠세라 발가벗은 몸으로 샤워를 하는 유진우의 곁에 냉큼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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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12-04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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