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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50] 삶은 어디에

| 신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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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연재 50] 삶은 어디에

(이지명 작)

 

 

"개자식. 이러고도 네가 무사할 줄 알았어? 더러운 놈. 우릴 어떻게 보구 이 따위 망 짓을 꾸며 으응?"


허지우는 꺽꺽 거리면서도 그가 하자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민경진은 씩씩거리며 당장 죽일 듯이 펄펄 날았지만 결국 목에서 손을 풀지 않을 수 없었다. 방구석에 놓인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며 민경진이 담배를 꺼내 물자 허지우가 다가서며 딱 하고 라이터를 켜 주었다.


"너무 신경 쓰지 말게. 나로서도 어쩔 수 없었네."

자기도 한 대 붙여 물며 내뱉는 허지우의 말이다.


"더러운…"


민경진은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어찌 보면 일이 잘된 것 같기도 하다. 훗날 어떤 죄목의 증거는 자기가 아닌 전권 대표라는 자가 지금 남기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자기는 허지우의 어설픈 그물 속에서 자유로이 빠져 나올 수 있는 유일한 출로이기도 했다. 죄는 자기가 아닌 배창호가 남긴 이상 양국 공안 기관에서 합의된 공개 총살 집행 무산에 대한 그 어떤 책임도 자기에게는 없게 되는 것이다.


벌써 듣는 사람의 신경을 자극시키는 신음이 섞인 괴성 소리가 두 사람의 귓가에 들려 왔다. 그러나 민경진은 아닌 보살하며 허지우의 네모진 얼굴을 의미 있게 지켜보았다. 서로 내심을 속일 수 없는 것이 동업자의 마음이라 할까, 허지우 역시 야릇한 미소를 띤 채 민경진을 주시한다. 마치 이런 일쯤은 속 넓은 사내의 대범함으로 냇물 건너 듯 훌쩍 뛰어 넘으라는 식이다.


민경진으로서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허지우가 꾸민 이번 일 역시 그 혼자의 생각과 결심이 아니라는 것을 그가 왜 모르랴. 허지우는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하나의 꼭두각시에 불과할 뿐이다. 격분에 치를 떨며 허지우의 귀뺨을 칠지언정 그 이상의 어떤 일도 백해무익이라는 것을 민경진도 잘 알고 있었다. 한 마디 대화도 없었지만 두 수사 일꾼은 같은 동업자로서 각기 내 비칠 수 없는 내심의 소리를 아주 자연스럽게 서로 교환하며 모든 것을 어물쩍 넘겨 버리고 있었다.


일은 그것으로 모든 것이 마무리 될 듯도 싶었다. 그러나 뜻밖의 사고가 터질 줄 누군들 알았으랴. 누워 운신도 못하던 마 윤이 이 절정의 순간에 눈에 불을 켜 달고 뛰어들 줄 민경진은 예상도 못했다. 허지우도 처음 두 여인이 서로 우연하게 잔을 바꾸었을 때 불안을 느낀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괴성의 대상이 자기 처일 경우 사내는 이성을 잃고 살인까지 저지를 수 있다. 그러나 처가 아닌 다른 여자일 때 그것은 아무 문제가 안 될 것이었다.


그저 뛰어 들어 배창호로 하여금 더 큰 수치감을 주자던 것뿐이었는데 일은 예상외로 번져갔다. 미리 나와 그것부터 막지 못한 것을 후회하면서 허지우는 바람같이 뛰어 나갔다 그 뒤를 따라 민경진도 부리나케 따라 뛰었다. 그러나 한 발 늦었다. 벌써 문이 열리고 떡대 같은 사나이가 배창호의 방으로 뛰어 들었다.


마 윤은 눈앞에 펼쳐진 정경에 그만 눈이 뒤집혀 지고 말았다. 그러지 않아도 큰 그의 두 눈이 금방 땅에 떨어질 듯 툭 불거졌다. 거쿨진 손을 들어 비비고 또 비비고 봐도 분명 웬 사내와 알몸으로 뒹구는 여자는 자기 아내 기숙이었다. 이 여자가 진정 자기와 살을 붙이고 자식까지 낳은 아내란 말인가?


어흑, 마 윤은 훅, 숨을 들이 그으며 격분으로 온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 뜻밖의 정황을 배창호는 아는지 모르는지 더 한층 기세를 올리며 여자의 하신을 내리 찧고 있었다.


최절정에 오른 듯 머리를 뒤로 젖힌 채 두 눈을 감은 그녀의 입에서는 끊임없이 괴성이 터져 나왔고 입귀로는 질질 거품 섞인 침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배창호의 입에서도 흰 거품이 부걱부걱 괴여 흐르고 있었다. 헉헉 거리며 연속 찧어대는 그의 벌건 몸뚱이는 온통 땀으로 번들거렸다. 사람이 아니라 아예 미쳐버린 두 마리의 야수 같다. 그것이 사람의 본능이 아닌 환각제에 의한 광기인줄 마 윤이 어찌 알랴. 참으로 눈뜨고 못 볼 미친 광경이다. 아무려면 이렇게까지 추하고 더러운 년인 줄 상상도 못했다.


미처 예상 못한 충격 앞에서 인간은 이성을 잃기 마련이다. 마윤 역시 천둥 같은 괴성을 지르며 상위에 나뒹구는 맥주병을 집어 들고 그때까지 정신없이 방아를 찧는 배창호의 정수리를 향해 힘껏 내리쳤다.


그러나 쓰러진 것은 배창호가 아니라 뜻밖에도 마 윤이다. 민경진이 마 윤의 뒤에 다가와 권총 손잡이로 그의 뒤통수를 그보다 먼저 내리쳤기 때문이었다.

어찌나 강하게 내리쳤는지 단통 붉은 피가 뿜어져 나와 굵은 그의 목을 적셨다.

높이 쳐든 맥주병을 그대로 떨어뜨리면서 마 윤은 그 큰 눈을 희뜩 뒤집으며 방바닥에 고꾸라졌다. 쓰러진 마 윤의 팔 다리가 푸들푸들 경련을 일으키듯 떨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일 뿐 거구의 사내는 용 한번 써 보지 못하고 너무도 빨리 눈도 감지 못한 채 쓰러진 그대로 숨지고 말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숨진 시체를 향해 벌거벗은 기숙이가 엉금엉금 기어오고 있었다. 쓰러진 남자가, 죽어버린 사내가 자기 남편 마윤이 아니길 바라면서. 아니 이것이 정녕 현실이 아니고 어느 날 뜻밖에 꾼 허무맹랑한 꿈이길 바라면서, 기어오는 여인의 두 손에 방바닥에 질퍽하게 고인 선지 피가 묻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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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에 길게 자리 잡은 제강시는 깜깜 칠야 속에 묻혀 깊은 잠을 자고 있는 듯 했다. 철도역을 제외한 그 어디서나 불빛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

삼경을 눈앞에 두고 있는 시간이어서 도시는 더더욱 무거운 침묵 속에 빠져들었다.

조용히 귀 기울이면 멀리서 기슭을 치는 파도 소리만 처얼썩 들려온다.


별안간 도시로 들어오는 산협 쪽에서 밝은 불빛이 쏟아져 나왔다. 그와 함께 뿡- 하는 긴 기적 소리가 잠든 도시의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혜산 발- 평양행 제 10열차가 요란한 마찰음을 내면서 제강역에 들어섰다.


열차가 역 홈에 멎자 문기는 한태규를 업고 신미의 부축을 받으며 차에서 내렸다. 한태규는 아직 죽지 않았다. 신미는 개찰구를 빠져 나오면서 누군가 찌를 듯 자기를 주시하고 있음을 육감으로 느끼며 무심결에 그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두 사람의 눈길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섬뜩한 느낌에 얼른 고개를 돌린 신미는 그게 누굴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생소한 눈길이 아니었다. 어디서 보았던가, 문득 짚이는 것이 있었다. 며칠 전 한태규의 부름을 받고 역전동 아지트에 갔을 때 키 낮은 담장밖에 세워 놓은 지프차 안에서 자기를 내다보던 그 눈길이다.


갱생 61형 그 지프는 이영식의 차였다. 그렇다면 그의 운전사? 어쩐지 께름칙한 생각이 들었다. 그가 이 밤중에 무엇 때문에 개찰구까지 나와 자기를 지켜본단 말인가. 이영식이 시켜서일까? 한태규 사건을 보면 분명 이영식은 뒤에서 무엇인가 조종하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미행? 자기를 미행하여 도대체 뭘 어쩌겠다는 것인지. 신미는 온 몸에 소름이 끼쳐 옴을 느끼며 한태규를 업고 수걱수걱 걷기만 하는 문기의 뒤에 바싹 붙어 섰다. 그들이 국도로 나섰을 때 한 떼의 사람들이 왁자지껄 떠들며 구곡동 쪽으로 몰려가고 있었다.


문기가 그 사람들을 불러 세웠다. 남녀 할 것 없이 모두 구곡동으로 올라가는 사람들이다. 문기는 신미더러 그 사람들을 따라 가라고 권유했다. 집에서 기다릴 신철이 생각에 할 수 없이 따라서긴 했지만 신미는 미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괜찮소. 시 병원에 입원시키고 나 역시 집에 들어가겠소. 아침 일찍 외화벌이 단위에 알려 주도록 신미가 조처해 주었으면 좋겠소,"


역시 사람 좋은 최문기다. 신미는 문기의 인정어린 너부죽한 얼굴을 다시 한 번 쳐다보며 그 사람들의 뒤를 따라 나섰다.

 

구곡동을 지나 집이 있는 산골짜기 초입에 들어섰을 때였다. 질풍 같이 달려오는 한 대의 지프차가 강한 전조등 불빛을 신미에게 비추며 지나갔다.


신미는 그저 지나가는 차겠거니 하고만 생각했다. 잠깐 다리쉼을 하고 산 그림자가 무겁게 드리운 골짜기 오솔길에 들어선 신미는 부지런히 걸었다. 초행길 같으면 공포의 산길 일 수도 있겠지만 신미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길이라 무서움 같은 것은 없었다. 그렇지만 웬일인지 어두컴컴한 골짜기에 들어선 순간부터 역 개찰구에서 찌를 듯 지켜보던 그 눈길이 자꾸만 따라오는 것 같은 착각에 신미는 자주 뒤를 돌아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금방 지나온 길에 재빠르게 다가오는 그림자가 나타났다. 잘못 보았나 싶어 눈을 비볐지만 성큼성큼 뛰다시피 걸어오는 그 그림자는 틀림없는 사람이었다. 순간 신미의 머리칼이 쭈뼛 일어섰다. 식은땀이 등골에 확 내돋는다. 그녀는 정신없이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집 주위에 울타리처럼 쌓아 올린 돌담 뒤에 또 하나의 검은 그림자가 자기를 기다리고 있을 줄 그가 어이 알았으랴.


신미는 뛰면서도 뒤를 돌아보았다.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맹렬한 속도로 뛰어 간다고 생각했지만 따라오는 그림자와의 간격은 멀어질 줄 모르고 점점 좁혀지는 것 같다. 당장 그 그림자가 자기를 덮쳐누르는 것 같은 공포에 쌓인 신미는 목이 터져라 신철이를 부르기 시작했다.


"신철아. 신철아…"


굳 잠이 들었던 신철이는 거푸 자기를 부르는 다급한 소리에 잠이 깼다. 한 동안 꿈이 아닌가 싶어 일어나 앉은 자세로 눈만 껌벅거리던 그는 재차 들려오는 부름 소리를 듣고서야 정신이 펄쩍 들었다. 분명 누나의 목소리다.


무엇에 쫓기는 듯  겁 질린 목소리가 그처럼 기다리던 누나임을 알았을 때 신철은 급한 나머지 성한 사람처럼 후다닥 일어섰다. 그리고는 항상 발치에 세워 놓았던 목발을 찾아 짚고 밖으로 나섰다. 언제인가 누나가 사다 주었던 전지를 켜들고 집으로 올라오는 그 외통길을 향해 정신없이 마주 달려갔다.


검은 그림자는 마치 보폭을 맞추듯 자기와 마주 서서 한 발 한 발 뒤로 물러나는 신미를 향해 조금씩 다가들었다.


"누구세요?"


어둠 속이지만 전혀 생소하지 않은 그 체취까지도 알 수 있을 것 같은 사내를 바라보며 두려움으로 온 몸을 떨었다. 이제 더는 물러설 데도 없었다. 집 둘레에 쌓아 놓은 돌담이 신미를 막아섰다. 역전 개찰구를 빠져 나올 때부터 온 몸을 휩싸 안았던 불길한 예감이 드디어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사나이도 걸음을 멈췄다. 확, 불 광이 센 전지불이 신미의 얼굴을 비췄다. 안광을 찌르는 것 같은 그 빛을 피할 길이 없어 신미는 황급히 팔을 들어 막았다. 그러자 껌벅 그 불빛이 꺼졌다. 사내의 쉰 목소리가 울렸다.


"네가 최문기와 작당을 하여 한태규를 죽였느냐?"

"아니 그건?"

전혀 뜻밖의 소리에 신미는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리고 주열이는 왜 죽였느냐. 그러고도 네가 살기를 바라지는 않았겠지?"


이영식이다. 듣기에도 소름 끼치는 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신미는 자기에게 최후의 순간이 닥쳐왔음을 직감했다.

이영식으로서는 자기를 용서할리 없었다.

이미 전부터 자기에게 죽음을 선고한 그가 아들까지 죽은 이 마당에서 절대로 살려 두지 않을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뭐라 대꾸하기도 싫다.


신미는 고개를 들어 별빛이 총총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못 견디게 그리운 아버지, 엄마의 정다운 모습이 그 별빛 아래 떠올랐다. 그리고 신철이도, 사랑하는 동생에게 무엇이든 아낌없이 안겨주기 위해 가슴 조이며 이들이 시키는 위험한 일에 뛰어든 자기 자신이 미치도록 불쌍했다.


비참한 종말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신미는 앞에 선 이영식의 어두컴컴한 낯짝을 쏘아보았다.


 이영식은 품속에서 차가운 빛이 도는 총을 꺼내 들고 절컥 장탄을 하며 신미에게 그 총구를 들이댔다. 오만 한 년, 생각 같아서는 갈기갈기 찢어 죽이고 싶다.

 전신 모두를 칼 탕쳐 그 간을 꺼내어 씹고 싶었다. 그래도 직성이 풀릴 것 같지 않다. 살진 그의 볼이 푸들푸들 떨렸다.

그는 천천히 총구를 들어 신미의 이마를 바로 겨누면서 방아쇠에 건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내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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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2-11-29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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