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홈 > 탈북사회 > 탈북문학
  1. 프린트하기
  2. 기사목록
  3. 이메일보내기
  4.   글자 작게 하기글자 크게 하기
탈북사회
탈북문학

[연재 48] 삶은 어디에

| 신준식   

이미지

장편소설

[연재 48] 삶은 어디에

(이지명 작)

 

 

무표정한 얼굴이다. 기숙은 가슴이 철렁했다. 정말 의사의 말대로 자기 처마저 알아보지 못할 만큼 식물인간이 되었는가? 오륙이 성한 사람도 펑펑 넘어지는 이 비상시국에 식물인이라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렇다면 정말 복장이 터질 노릇이다. 석삼년 거의 되도록 함께 아이 낳고 동거 동락한 둘도 없는 자기 남편이고 보면 이건 너무도 아깝고 비참한 인생 비극이었다.


"여보, 해삼 아버지. 저에요. 기숙이에요. 여긴 은순이 엄마구요. 정말 못 알아보겠어요?"

부르짖다시피 발을 구르는 기숙이의 애타는 모습을 그냥 물끄러미 올려다보면서도 마 윤의 얼굴엔 아무런 변화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저 무덤덤한 표정일 뿐이다.

"여보, 여보…"


기숙은 바질바질 타들어 가는 가슴을 부여잡고 그냥 간절히 불러 보았다. 드디어 마윤의 눈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기숙이 눈도 함께 커진다. 쿵, 쿵 춘희의 심장도 금방 밖으로 튀여 나올 듯 못 견디게 뛰었다.


마 윤의 눈빛이 갑자기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분노가 어린, 아니 원망도 함께 섞였다. 왜 저럴까. 자기를 이렇게 만든 그 폭군 패거리들에 대한 분노 때문일까? 아니면 평생 식물인간으로 덧없이 살아야 할 자기 처지를 다소나마 알고 저러는 것일까, 기숙은 다시 저예요. 하며 남편을 일으켜 세워 보려고 가까이 다가갔다.

그 순간이다. 마 윤의 입에서 거친 욕이 터져 나왔다.

"이 쌍년, 갈보 화냥년아."


철썩, 

후다닥 일어난 마 윤의 솥뚜껑 같은 손이 기숙의 왼뺨을 보기 좋게 후려 갈겼다. 그리고 나서도 성에 차지 않은지 마 윤은 숨을 헐떡거리면서도 또 한 번의 기회를 노려본다. 불이 번쩍 나게 한 대 얻어맞고 엉겁결에 물러난 기숙은 한동안 어안이 벙벙했다.


그러나 분명 자기 뺨을 친 것이 다름 아닌 남편이었음을 알게 되자 미칠 듯 기뻐 날뛰기 시작했다. 마치 하늘을 통째로 얻은 듯, 그래. 이건 식물인이 아니라 폭군이다. 살았다. 정녕 좀 다치긴 했어도 아무렇지도 않은 원래대로의 남편 마 윤이로 돌아 왔다는 이 현실이 그처럼 기쁘고 환희로울 수 없는 것이었다.


"됐어요. 이젠. 어서 더 욕해 봐요. 마음껏 때려 봐요. 마 윤아. 넌 살았다. 살았어. 살았단 말이야. 아하하…"


정상이 아닌 듯싶게 끊이지 않는 폭죽 소리마냥 기숙이 웃음소리가 병실에 울려 퍼졌다. 덩실덩실 춤을 추는 기숙의 얼굴에 기쁨의 눈물이 줄줄 흘러 내렸다.

급히 뛰어 들어온 의사 간호사도 한동안 멀거니 서서 그 모양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발을 구르며 소리를 질렀다.


"그만 하지 못하겠소?… 하 이것 참. 이것 보시오. 절대 안정이 필요한 환자 앞에서 이건 무슨 추태요?"

"너무 기뻐서 그랬어요. 미안해요. 선생님. 환자가, 애 아버지가 날 때렸어요. 정상인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날 때리고 욕하고 하겠어요. 안 그렇습니까. 의사 선생님?"

"그게 정말이요?"


의사도 이상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그때까지 눈을 부릅뜨고 기숙이만 노려보고 있는 마 윤에게 다가가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마 윤과 눈길이 마주치자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드는지 급히 곁에 앉으며 팔을 당겨 맥부터 짚으며 한 손으로 마 윤을 자리에 눕혀 놓는다. 이리저리 말도 시켜보며 진맥하던 의사가 그냥 머리를 기웃거리며 잠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것 참 이상하군. 아침과는 영 딴판인걸, 아주머니 이런걸 보고 기적이라고 합니다. 이젠 마음껏 웃어도 되겠습니다. 하도 체력이 건장한 사람이니 이런 경우도 있긴 하지만, 지금 상태라면 며칠 안정하고 잘 간병하면 다시 건강해 질 겁니다."


50대의 나이 지긋한 의사는 엊저녁 밤에 내가 오진했는가 하고 중얼거리며 나가버렸다. 기숙은 의사가 나가자 그 자리에 스르르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의 어깨가 물결쳤다. 그렇게 가슴 조이던 불행이 한 발 뒤로 물러선 것이다. 얼마나 바라던 소원이었던가. 그 남편을 위해 그리고 아들을 위해 한 몸 불구덩이에 집어 던진다 해도 아무런 후회도 없을 기숙이었다. 이제는 됐다. 기숙은 다가온 행운이 벅찬 듯 춘희를 부둥켜안고 다시 엉엉 소리 내어 울음을 터뜨렸다.


건너편 침대에 누워 이쪽을 그냥 주시하던 이마에 횐 붕대를 처 감고 있는 사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슬금슬금 걸어 바깥으로 나왔다. 길재의 시체를 감정한 법의로부터 봉투에 넣은 편지를 오후 첫 시간에 받고 그 내용을 그대로 집행한 흰 붕대는 마 윤이 깨어나고 그의 건강 상태가 파악되자 지금 허지우에게 가는 길이다. 그가 바로 허지우와 협력하여 강기수 살해 연극의 주역을 담당한 호송원이었다.


크지 않은 상처였지만 배창호 일행이 강을 건너갈 때까지 꿈쩍 말고 병원에 누워 있으라는 허지우의 지시대로 그냥 시병원에 입원하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한 통의 편지가 법의로부터 자기에게 전달될 줄이야. 김춘희를 보내고 난 후 허지우는 약속대로 법의 아닌 법의를 죽은 길재의 시신을 감정하라고 보내면서 그에게 새 지시를 종이에 적어 보낸 것이었다.

 

흰 붕대는 머리에 모자를 푹 눌러쓰고 편지에 적힌 약속 지점인 시 우편국 쪽으로 잰 걸음을 옮겼다. 우편국 앞 도로 옆에 안전부 번호판을 단 지프차 한 대가 서 있었다. 흰 붕대는 무작정 차문을 열고 들어섰다. 운전석에는 검은 선글라스를 낀 허지우가 앉아 있었다. 길가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어두컴컴한 길옆에 선 차를 눈여겨 살펴보는 사람은 없었다.


"상태가 어떤가?'

흰 붕대가 조수석에 들어와 앉자마자 허지우가 질문했다.

"깨어났습니다. "

"상태가 어떠냐고 물었다."

앞만 주시하며 묻는 허지우의 물음에 냉기가 서렸다.

"상태는 대단히 좋습니다. 의사의 말이 며칠 안정하면 별일 없을 거라고 했습니다."

"음. 그래?"

"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다친 자의 여편네라는 여자는 아마 바람깨나 피우는 모양인지 일어나자마자 귀뺨부터 후려갈기더군요. 그러면서 뭐라고 소리 쳤는지 압니까? 히 히… 화냥년 갈보, 그담 뭐랬더라."

"그래? 그게 사실이야?"

"아 예. 제가 거짓말 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갈보라…"


또다시 나불거리려 드는 흰 붕대의 입을 제지시키면서 허지우는 잠시 생각해 보았다. 역시 짐작대로 외지에서 들어와 일을 그르친 여자들이다. 돈 몇 푼을 위해 여관이나 매점들에서 인육 장사나 하며 지내는 형편이고 보면 그다지 품 들여 생각해 볼 가치도 없는 것이다.

이제는 시간도 없다.


사건 신고를 온 김춘희를 보는 순간부터 결심하고 무르익힌 배창호에 대한 두 번째 작전은 이제 시작만 하면 될 것이라는 생각이 허지우를 만족스럽게 했다. 흰 붕대를 끄잡아 당긴 허지우는 무엇이라 그의 귀에 대고 한 동안 지시를 하였다. 흰 붕대가 알았다는 듯 연속 고개를 끄덕거린다.

조금 후 지프차는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흰 붕대는 다시 병원을 향해 히죽거리며 걸어갔다.


쑤어놓은 미음 몇 숟갈을 넘기고 마 윤은 다시 잠들었다.

"씩-씨 익"

고르게 숨을 쉬는 그 모습을 정겨운 시선으로 내려다보며 기숙은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대기여관 앞 골목길에서의 강탈 행위에 대한 과정을 금방 마 윤의 입을 통해 전해들은 춘희는 저녁 9시에 만나자던 허지우의 말이 생각났다. 한시바삐 알려야 한다. 빨리 알릴수록 그 살인범들을 잡는데 유리할 거라는 생각이 두 여인의 머리에 거의 동시에 떠올랐다.

 

마윤이 잠들면 크게 간호할 필요가 없는 터라 이미 오간 말대로 두 여인은 허지우를 찾아갈 준비를 했다.

 

 벗어 놓았던 옷들을 챙겨 입고 머리도 다시 빗었다. 기숙은 단단히 별렀다. 그 뒷골목 깡패 놈들을 기어이 잡아 길재 아저씨의 원한도 풀어주고 빼앗긴 물건들도 되찾으리라고. 잡기만 해봐라. 어쩌면 세월이 이렇게 암담한지 모르겠다. 자그마한 먹거리를 위해 생사람을 때려 숨지게 하다니. 태평세월 같으면 경악할 일이었지만 이 고난의 세월에는 눈 한번 끔뻑하면 그대로 곧 잊어버리는 일이다. 더욱이 국경에서는 그 농도가 더했다. 그가 누구든 찔러 넘기고 강을 건너면 그 뿐이다.


기숙이도 그걸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자기 남편 신상과 관련하여 일이 터지고 보니 이 세월이 못 견디게 원망스러워졌다. 다행이 고맙게도 도 안전국이라는 높은 곳에서 이 사건을 중시하는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춘희 언니와 자기를 저녁 식사까지 초대하는 것을 보면 그 진속을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아마도 외지 사람들이 자기 관할 구역에서 피살된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정도이면 자기의 소원을 능히 들어줄 거라는 믿음도 생겼다. 도 안전국 정도면 그까짓 놈들 잡아내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었다.


기숙은 낮에 춘희더러 보다 높은 곳에 찾아가 보라고 권유한 자기의 처사가 선견지명이 있는 행동이었다고 자부했다. 두 여인은 다시 한 번 누워있는 마 윤의 모포 깃을 살펴 주고는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는 압록강 쪽에 위치한 '모란각' 이란 식당을 향해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배창호는 주량이 상당한 사람이었다.

저녁 일곱 시경부터 시작된 이 만찬회에서 참석한 사람들 모두가 한잔씩 권하는 술잔을 사양 없이 받아 마셨음에도 별로 취하는 것 같지 않았다. 상에 올린 술은 모두 '삼백주'다. 개성 인삼 한 뿌리씩 들어 있는 이 술의 알 콜 농도가 겨우 30도이다보니 배창호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50∼60도 술병 두 세 개쯤은 능히 해치우고도 남는 자기 주량에 30도 같은 것은 맹물 마시기나 다름없었다.


폭주하는 그의 심리 상태에는 패자의 억울함도 섞여 있었다.


 강기수가 죽는 바람에 가지고 넘어온 청구서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휴지장이 되고 말았다. 강기수의 연극 같은 '도주사건'이 배창호로서는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았지만 강둑에서 죽어 주어야 할 놈이 중도에서 사살돼 버렸으니 당장 어찌할 방도를 찾기가 힘들었다.

 

결국 자기들의 요구는 물거품이 된 셈이다. 그러나 배창호는 절대 여기서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아편 밀수는 강기수 혼자 한 일이 아니다.

보다 배후에서 일을 꾸민 큼직한 놈들은 이 통에 더 깊숙이 잠적해 버렸을 것이지만 어쨌든 그들을 잡는 것은 시간문제일 따름이다.

오늘은 그저 이렇게 물러가지만 이 문제를 더욱 확산시켜 밀수 범죄에 연루된 어느 놈이든 기어이 강둑에 끌어내 총살에 처하고 말 것이라며 마음을 다졌다. 못할 것도 없다. 아편 밀수는 이 땅에 그 원천지가 있는 한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시 당 조직부장을 위시한 간부들과 안전국 부, 과장급들은 모두 간단한 주연을 끝마치고 돌아갔다. 남은 것은 허지우 뿐이었다. 민경진이 그의 옆구리를 찌르며 이젠 그만 돌아가자고 청을 넣었지만 배창호는 서둘러 나가는 그들을 치떠 보며 코웃음을 쳤다.


'꼭두각시 같은 놈들. 네놈들 속내를 내가 몰라서. 흥. 먹을 줄도 놀 줄도 모르면서. 아니 알겠지. 알면서도 눈치를 보느라 그러겠지. 불쌍한 것들. 하여튼 저한테 달린 입 한번 제 맘대로 벙긋 못하면서도 연극은 참 잘해. 더러운…"


배창호는 또 삼백주 한 잔을 단숨에 비워 버린다. 민경진은 그러는 그가 몹시 아니꼬웠다. 예의상 손님을 앉혀 놓고 주인이 모두 가버리는 경우는 없다. 그런데 모두 가버렸다. 그런데도 그 자리에 버티고 앉아 그냥 마시고 있다니? 오늘 일 때문에 그러는가? 이미 쏟아진 물이다. 물론 배창호의 일그러진 심리를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런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다. 이제 다시 넘어가서 이쪽 상황을 구체적으로 보고하고 재 작전을 전개할 수밖에 없다. 그러자면 이들에게 자그마한 틈도 내주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전권 대표라는 자가 주인이 떠나간 술자리에 그냥 버티고 앉아 야료를 부리듯 한다. 물론 허지우가 남아 있긴 하지만 그가 배창호 자신과는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른 상대라는 것을 정녕 모른단 말인가. 안타깝기 짝이 없다.


허지우는 주인을 불러 빈 그릇들을 모두 내가게 하고 새롭게 상을 차리게 했다. 이제는 삼백주가 아니라 중국산 맥주를 들여오게 했다. 두 여인이 올 시간이 된 것이다 허지우에게는 배창호가 그냥 야료를 부리듯 버티고 앉아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럽고 한편으로 고마운 일인지 모르겠다. 물론 나가면 또 그 상황에 맞는 방법이 있겠지만 생각 밖으로 배창호는 보이지 않는 허지우의 그물에 너무나도 쉽게 걸리는 듯싶다.


주인 윤모가 들어오며 손님이 찾아 왔다고 알려 주었다. 허지우보다 배창호가 더 먼저 반응을 보였다.

"손님? 다 떠나간 손님이 왜 또 와…"


(내일 계속)

  • 트위터
  • 페이스북
입력 : 2012-11-27 00:07 
  1. 프린트하기 
  2. 기사목록
Copyright ⓒ 뉴포커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독자리뷰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맨위로
주소 :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 | 회사번호 02-545-3125 | 신문사 등록번호 서울 아01979 | 대표자 장진성 | 발행인 장진성 | 후원계좌 : 국민은행 469301-01-176919 | 메일 : admin@newfocus.co.kr | 트위터 : twitter.com/newfocusforyou | 페이스북 : facebook.com/newfocusforyou | Copyright ⓒ 2013 by newfocus.co.kr All Rights Reserved. 뉴포커스 외국언론 반응 사진갤러리 기사제보 admin@newfocus.co.kr 트위터바로가기 페이스북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