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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43] 삶은 어디에

| 신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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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연재 43] 삶은 어디에

(이지명 작)

 

 

제7장 마지막 얼굴들


날 밝을 무렵 길재는 깨어나지 못하고 그대로 숨지고 말았다. 기숙이까지 포함하여 여관에 든 사람들의 도움으로 심하게 다친 두 사내를 시 병원까지 데려 왔으나 심한 뇌 타박과 출혈로 하여 길재의 목숨을 구할 수는 없었다. 마 윤이도 지금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단단한 참나무 몽둥이에 얻어맞은 마 윤이지만 목숨만은 지금까지 부지하고 있다. 의사의 말은 깨어나도 성한 육체를 보존키는 어렵다고 한다.


기숙은 억장이 막혔다. 어쩌다 누가 오라기나 한 것처럼 불쑥 나타나 가지고 이 모양이 되었는지. 애들과 노모는 어쩌고, 오만가지 의문의 불쑥불쑥 치밀었으나 본인 당사자가 한 마디 말도 없이 누워만 있으니 가슴만 부글부글 끓는다. 어쩐지 이 모든 일이 모두 자기 때문에 일어난 것 같았다. 벌써 이곳에 온지도 한 달이 넘었다. 그간 가지고 온 물건을 떼이고 이러그러 모은 돈이 얼마간 주머니를 불리고 있었지만 떼인 물건 값을 물어 주기에는 어림없는 액수다.


엎친데 덮친다고 남편까지 이 지경이 되고 보니 앞으로의 일이 어떻게 될지 그저 막막한 생각만 꼬리를 친다. 그리고 이미 숨진 길재아저씨는 또 어찌한단 말인가.


갈수록 첩첩 심산이라더니 지금의 자기를 두고 이르는 말 같았다. 심한 타박상을 입은 남편 역시 지금까지 정신이 없다. 그런 몸으로 자기 친구를 업고 걸어온 것을 생각하면 눈물 또한 앞을 가린다. 마 윤과 길재는 동년의 꿈을 함께 키워온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 마치 쌍둥이처럼 언제나 함께 지낸 막역지우다. 아직은 젊은 나이인 서른다섯, 끝내 한 사람은 유언 한 마디 남기지 못하고 친구의 곁을 영영 떠나가 버렸다.


기숙은 남편의 머리맡에 앉아 그냥 서럽게 울었다. 슬픈 사연보다는 지금부터 전개될 앞일이 더 막막하여 그렇듯 서럽게 우는 것인지도 모른다. 춘희는 마 윤의 이마에 덮은 찬물에 담가 짠 수건을 바꿔 주면서 울고 있는 기숙이를 달랬다.

 

"기숙아. 그러고만 있으면 어쩌니. 이젠 그만 울음을 그쳐."

"기가 막혀 그러우, 언니.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있단 말이요. 응? 엎친데덮친다고 갈수록 첩첩 심산이니 난 이제 어떻게 살아가오. 응? 언니."


앞일을 생각하면 설움이 북받쳐 못 참겠다는 듯 기숙은 와락 춘희의 품에 엎어지듯 안기며 왕왕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춘희의 눈 굽에도 가랑가랑 눈물이 괴여 올랐다.


이 순간, 기숙에게 닥친 불행을 두고 춘희도 집에 두고 온 남편과 딸의 신상이 뚜렷이 떠올랐다. 물론 아직까지는 식량이 떨어지지 않아 굶기까지는 많은 시일이 남아있다. 하지만 순간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것이 춘희의 심정이었다.


그것은 여기 혜산에서 전혀 뜻밖에 한태규를 만난 다음부터 가져보는 근심과 걱정이었다. 13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 전혀 뜻밖의 장소에서 전 남편과의 상봉을 그처럼 당황스럽게 맞이할 줄은 미처 생각 못한 춘희였다. 반갑다기보다는 괴로운 상봉이었다.


얼마나 기다렸던 사람이었는지 모른다. 13년 전 비록 한과 슬픔을 안고 초소마을을 떠나 왔어도 단 한 순간도 잊어본 적 없는 한태규였다. 그 애절한 마음과 기다림은 은순이가 태어나서부터 곱절 더 했었다.


쏘아버린 총알처럼 몇 년이 흘러도 아무런 소식도 없더니 어느 날 오라는 딸은 오지 않고 반갑지도 않은 외눈깔 사위가 히죽거리며 찾아오듯 갑자기 최문기라는 제대 병사가 나타나 사랑을 고백했을 때 춘희는 얼마나 황당했는지 모른다.


따스한 봄날의 때 아닌 우박 같은 병사의 고백을 흘려버리며 춘희의 기다림은 계속되었다. 그러나 두고 온 할머니의 옥가락지 유물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아니 소식도 없었다.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그처럼 집요한 총각의 애끓는 사랑을 마침내 받아 들였을 때 춘희의 가슴 한 구석에는 언제 닥칠지 모를 알 수 없는 불안이 늘 자리 잡고 있었다.

 

그 불안을 몰고 올 것이 마침내 다가왔다. 장신미를 통해 한태규가 자기가 사는 제강시 군부대 외화벌이 소장임을 알았을 때 춘희는 엄습하는 불안으로 지금껏 가슴을 죄여 왔다. 지금도 그 불안은 춘희를 때 없이 얼어들게 만든다. 그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한태규의 그 냉혹함 때문이었다.


자기의 품속에서 옥가락지를 꺼내며 은순이를 절대 포기할 수 없다고 차갑게 내 뱉던 한태규의 그 모습은 김춘희에게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머나먼 산중 초소 마을에서의 그 비극을 되새기게 했다.

 

운명은 참으로 짓궂은 것이었다. 최문기와의 결혼이 성립되던 때와 거의 발맞추어 제강시에 나타난 한태규. 그의 손에 아직 남아 있으면서도 돌려주지 않는 옥가락지를 생각하면 한태규는 절대 침묵을 지킬 사람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른다. 더욱이 자기가 데리고 있던 병사와의 결혼이 그에게 어떤 자극을 주었을까는 불 보듯 명백한 것이다. 아직은 혜산에서의 장사거래가 끝을 보지 못했지만 춘희는 오늘 들어온 열차로 집에 돌아가려고 준비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끔찍한 일이 그의 발목을 붙들고 놓아주질 않는다. 춘희는 서럽게 우는 기숙이를 보며 함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집에 있는 사랑하는 딸과 남편의 안녕도 함께 빌고 있었다.


"기숙아. 해삼(기숙의 아들)아버지는 절대 죽지 않아. 그러니 이젠 그만 그쳐 응? 이런다고 일어나는 것도 아닌데. 자, 어서"


춘희는 두 손을 들어 기숙의 눈언저리로 흐르는 눈물을 닦아 주었다. 그러자 기숙의 두 눈에서 샘솟듯 눈물 폭포가 쏟아졌다.


"언니 난 어쩌면 좋소. 애 아버지가 이대로 숨지지는 않아도 치료하여 일어나게 만들려면 엄청 돈이 들 텐데. 그리고 죽은 길재 아저씨며 그 가족은 또 어떡허구 이제 난 어쩌면 좋단 말이요. 응? 언니."

"그렇게 눈물만 흘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않니. 무슨 방법이 있겠지. 있으면 있는 대로 먼저 어떻게 해보자. 내게 있는 돈도 얼마 되지 않지만 네가 보태 써라."

"고맙소. 난 그저 평생 언니 신세만 질 년인가 봐."

"별말을. 어서 울음을 그쳐. 이렇게 울고만 있을 때가 아니야. 숨진 길재 아저씨 시신도 옮겨 가라고 병원에서 독촉이 불같아. 그리고 우린 아직 안전부에 신고조차 못하고 있잖니?"

"알았소. 이젠 울지 않겠소. 그저 너무도 기막힌 일이 돼서. 그런데 언니 누가 이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을까?"

"우리도 이곳에 와서 겪어 보았지만 원체 이 국경지대라는 곳이 어둡기 짝이 없는 곳이 아니니. 길재 아저씨나 해삼 아버지도 빈손으로 여기로 오지는 않았을 게다. 분명 골목 패거리들에게 걸려 이런 참변을 당한 걸 거야…"


비분과 울분 어린 춘희의 목소리는 기숙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말끔히 가셔갔다. 대신 분노가 이글거리게 만들었다.

 

"언니 말 듣고 보니 뭔가 집히는군요. 정말 이렇게 바보처럼 울고만 있을 때가 아니요. 언니. 그놈들을 잡을 수 있을까요?"

기숙이가 벌떡 일어났다.

 

"우리 이렇게 하자. 넌 그냥 애 아버질 돌보고 있어라, 내 지금 분주소에 가서 신고하겠어."

잠시 생각하던 춘희가 말을 마치자마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자


"언니 신고 하려면 분주소에 가지 말아요."

하고 기숙이가 만류했다.

"그건 무슨 소리니?"

"여기 혜산은 도 소재지에요. 보다 높은데 가서 신고해야 빠를 거요"

"그럴까?"

"그럼요. 신주동에 가면 도 안전국이 있어요. 살인 사건인 만큼 도 안전국 수사과에 직접 신고하는 편이 더 빠를 거요."

"알았다. 내 지금 그 곳에 찾아 갈 테니 넌 환자를 잘 돌보고 있어라. 애 아버지가 빨리 깨어나야 사건 해결도 빠를 테니까. 그리고 길재 아저씨 시신은 안전부 결론을 받고 내 가도록 하고."

"알겠소. 그럼 수고해 주우."


춘희는 품속에서 있는 대로 돈을 꺼내어 기숙에게 쥐여 준 후 문 밖을 나섰다. 그리고는 신주동을 향해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배창호는 동행한 민경진과 함께 도 안전국 수사과에 들어섰다. 민경진은 중국 길림성 공안소속 조선족 자치주 공안국 장백현 담당 마방대 정찰대장이다. 배창호와 민경진 모두 중국 조선족 동포였다. 두 사람은 범인이 체포되었다는 통보를 받고 직접 확인하기 위하여 지금 수사과로 찾아온 것이다.


수갑을 찬 강기수가 이미 불리 워 와 있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배창호는 민경진에게 눈총을 쏘았다. 민경진은 가지고 들어 온 가방 속에서 녹화 테이프를 꺼내 놓았다. 촬영 원본을 다시 복사한 것이어서 다소 화면의 선명도가 약할 수는 있어도 사람을 확인하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을 터였다.


허지우는 비디오에 필름을 집어넣고 TV스위치를 눌러 작동시켰다.

쏴- 하는 잡음과 아물거리는 화면이 한 동안 지속되더니 이어 흑백으로 산골짜기에 자리 잡은 작은 촌락이 나타났다. 깜깜한 어둠 속으로 배낭을 진 한 사내가 뒤를 흘끔거리며 조심히 걷는 모습이 이어진다. 사내가 뒤를 돌아 볼 때 그 얼굴이 화면이 크게 확대되자 강기수는 눈을 감아 버렸다.


그것은 자기 얼굴이었다. 어쩌면 저렇게도 정확히 찍었을까. 그런 것도 모르고 아무도 모르는 줄로만 착각하고 덤빈 자기 자신이 한없이 어리석어 보였다. 촌락의 어느 집 작은 뒷골방에서 그 쪽 거래자와 함께 아편덩이를 주고받고 불빛에 비추어 아편 농도를 검사하는 장면까지 나타나자 허지우는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벌떡 일어서더니 TV를 꺼버렸다.


배창호는 TV화면에 나타난 사내와 강기수를 번갈아 보면서 아주 흡족한 듯 입가에 미소를 흘렸다.


"강기수. 자기 행위를 인정하는가?"

허지우는 자못 날카로운 시선을 머리를 수그리고 서 있는 강기수에게 던지며 물었다.

"예. 인정합니다."

허지우는 호송원을 불러 강기수를 데려 가도록 한 후 배창호를 향해 돌아앉았다.


"어떻습니까? 만족합니까?"

"글쎄요. 뭐. 만족하기보다는 그저 유감스러울 뿐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이번 일을 계기로 국경 대안을 통해 다시는 이런 불민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물론이지요. 우린 국경을 통한 불법 행위들을 엄격히 타격할 것입니다. 앞으로 그 문제에 대해서는 안심하셔도 될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질문해도 되겠습니까?"

"그러시지요,"

잠시 동안을 두고 이번에는 민경진이 입을 열었다.

"이번 사건은 우리 중국 범죄사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특대 사건이었습니다. 요컨대 이 아편 밀수에 연관된 사람은 그 한 사람 뿐이 아니라고 짐작되는데요. 차후 일처리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질문을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괜찮습니다. 우리는 핵심 범인을 잡은 이상 그의 진술을 통해 나머지 일당들을 꼭 잡아 낼 것입니다."

"그럴 시간이 없을 텐데요?"

"그건 어떻게 하시는 말씀입니까?"

"강을 사이에 두고 양 대안에서 총살형을 집행하자는 청구서의 날짜가 며칠 안으로 박두해 왔습니다. 만약 잡힌 범인이 이내 입을 열지 않으면 좀 어렵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우리가 알기로는 영상에 찍힌 인물의 이름이 최문기라고 들었습니다."


"하하… 최문기라… 이것 보십시요. 범죄자들이 범행 당시 자기 본명을 쓰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 그리고 차후 수사 방향에 대한 걱정 비슷한 질문을 하셨는데 우리로서도 참 딱하기도 합니다. 당신들이 제공한 이 필름에 근거하여 거래자를 체포하기는 했지만 그를 철저하게 심문하고 그 뒤에 숨은 자들을 알아내는데 필요한 시간이 부족합니다.

방금 나간 범인이 죽고 나면 모두 숨어 버릴 건 당연한 이치가 아닙니까? 공개 총살형을 조금 고려해 보는 것이 이런 사건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방책이 되지 않을까요? 지금 단계에서 잡힌 범인을 철저히 조사하는 것이 차후 범인 체포의 주요 지름길이 아니겠습니까? 우리에겐 충분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건 참 어려운 문제군요. 곤란합니다. 나머지 일당을 잡아 없애는 것은 자국 내의 일입니다. 우리는 우리 측 요구를 늦출 권리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무엇 때문에 여기까지 찾아 왔겠습니까? 범인이 잡힌 이상 예정된 날짜를 어기지 말아 주십시요."


배창호는 단호한 어조로 자르듯 찍어 말했다. 허지우는 쓴웃음을 입가에 띄웠다. 속으로는 별 희떠운 놈 다 보겠다는 듯 욕을 해댔다.

"만약 못 하겠다면 어쩌겠습니까?'

 

사이를 두고 내지른 허지우의 말이다. 뜻밖이라는 듯 마주 쳐다보는 배창호의 얼굴 근육이 푸들푸들 떨렸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자리를 차고 일어나 마구 질타를 퍼붓고 싶다.

 

악의 상징인 마약 원료를 버젓이 생산하여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는 범죄를 조장하고도 뱃심을 내밀며 마치 자기를 조롱하듯 어쩌고저쩌고 하는 철면피한 자를 향해 깍듯이 예의를 지키면서 규정된 절차를 따라야 하는 것이 내키지 않았지만 상황은 마음 같지가 않다.


(내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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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2-11-15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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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티콘 이미지  happy0721   ( 2012-11-15 )    수정   삭제 찬성 : 8 반대 : 6

'삶은 어디에' 늘 다음회를 기다리며 삽니다. 얼마전부터인가 예고도 없이 연재가 늘 불규칙적이어서 실망도 되고 이제 슬슬 짜증이 나려 해요 저 하나만 그러는게 아닐 꺼예요 오늘이 목요일인데 이번주도 2회밖에 연재되지 않았어요 사정이 있으시겠지만 최소한 미리 아니면 직후에 알려주셨으면..... 뉴 포커스의 발전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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